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핀업 그림은 군사 프로파간다에서 큰 역할을 차지했다. 당시 핀업 그림들은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을 위로하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미국만의 독특한 애국주의가 숨어 있었다.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시민들에게 국가 방위를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가들은 무엇보다도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적 의무에 호소해야 했다. 핀업은 본토에 있는 아내와 여자친구를 지켜야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남성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유용한 도구였다. 한편 미국 여성들은 핀업을 통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성적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여성을 어머니나 아내 역할에만 묶어두었던 관습은 전쟁 기간에 무너졌다. 독립심과 당당함과 같은 새로운 속성이 미국 여성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적극적이고 바람직한 여성의 아이콘이었던 핀업 걸은 미국 여성들이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데 유용한 모델이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해외에 나가 있던 남성들이 귀환하면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과거로 돌아갔다. 전쟁 중 여성들의 노동력 동원을 적극 지원했던 정부는 이제 여성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애국적인 의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자리를 잃었고, 『플레이보이』와 같은 남성 잡지가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 기간 미국 여성들이 겪었던 일종의 해방감, 그리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았던 경험은 이후 1960년대 미국 여성운동으로 이어졌다.
During World War II, Pin-Ups played a big role in military propaganda. At the time, Pin-Ups weren’t just about comforting soldiers on the battlefield. Therein lay a uniquely American patriotism. In a liberal country like the United States, it is difficult to ask citizens to defend the country, so American politicians had to appeal to private obligations, first and foremost the moral obligations that exist between men and women. Pin-Ups were a useful tool to arouse men’s patriotism by conveying the message that they should defend their wives and girlfriends on the mainland. Meanwhile, American women were able to find their own new sexual identity through Pin-Ups. The conventions that confined women to the roles of wife and mother were broken during the war. New attributes of independence and assertiveness were spreading among American women. The Pin-Up Girl, an icon of the active and desirable woman, was a useful model for American women to create a new self. With the end of World War II and the return of men from overseas, the social climate for women returned to the past. A country that had actively supported women’s mobilization into the workforce during the war now began to tell women that it was their patriotic duty to return home. Women lost their place in the workplace and men-only magazines like Playboy became popular. However, the sense of liberation that American women experienced during the war, and the experience of living as full members of society, would later lead to the American women’s movement of the 1960s.
Ⅰ. 서론
Ⅱ. 섹슈얼리티의 관리
Ⅲ. 미국인의 의무
Ⅳ. 전쟁 이후의 핀업
Ⅴ.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