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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6세기 중반 한강 유역을 둘러싼 신라와 백제의 경쟁

548~554년의 협력과 충돌을 중심으로

6세기 중반 삼국이 한강 유역을 두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건이 발생했다. 548년에 발생한 독산성 전투는 고구려가 백제의 독산성을 공격하자, 신라가 구원군을 파견한 사건이다. 독산성은 충남 예산에 있었고, 신라의 구원군 파견은 541년에 양국이 화친을 맺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550년에 발생한 도살성 및 금현성 전투는 백제와 고구려의 충돌 와중에 신라가 독자적으로 두 성을 차지한 사건이다. 신라는 백제의 성이었으나 고구려가 점령한 금현성을 공취해 백제의 반환 요청을 거부할 명분을 확보했고, 금현성을 기반으로 도살성까지 얻었다. 백제는 신라의 팽창을 막기 위해 도살성을 공략했지만, 신라가 금현성을 차지함으로써 도살성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었다. 백제는 도살성을 부득이하게 신라에 넘겨주었는데, 여기에는 신라를 고구려 침공에 끌어들이기 위한 외교적 고려도 작용했다. 551년에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를 침공했다. 침공을 주도한 쪽은 백제였고, 두 나라 모두 551년 3월 무렵에 출진했다고 보인다. 신라군은 충주에서 출진했고, 한강 하류 일대를 공략할 때까지는 백제군과 함께 움직였다고 추정된다. 신라는 552년에 백제가 한강 하류 일대를 포기하자 한성 일대를 차지했고, 553년에 신주의 운영을 시작했다. 특히 고구려와의 관계 개선을 토대로 처음부터 한강 하류 일대 전체를 장악했다고 보인다. 백제는 551년 9월~552년 5월 사이에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 개선을 인지했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 백제와 고구려의 백합야 전투였다.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백합야 전투는 551년 9월~552년 5월 사이의 일이었다고 여겨진다. 한강 하류 일대의 공략에 성공한 백제는 고구려에 대한 추가 공격을 제안했지만, 신라가 그 제안을 거부하면서 고구려와 단독으로 교전해야 했다. 이 와중에 고구려와 관계를 개선한 신라는 상주의 군사력으로 사비성을 위협했고, 백제 조정은 한강 하류 일대를 포기하고 백제군을 귀환시킬 수밖에 없었다. 553년에 진흥왕은 성왕의 딸과 혼인했다. 성왕은 신라 침공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 혼인을 제안했고, 진흥왕은 혼인과 더불어 상호불가침의 ‘맹’을 성왕과 함께 실시함으로써 백제의 침공 의지를 꺾고 전쟁의 책임을 성왕에게 전가하고자 했다. 관산성 전역은 554년 7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전투는 9월의 진성 전투였다. 신라군은 이곳에서 가야군과 백제군의 집결을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진성 전투의 패배로 수세에 몰린 신라가 고구려에 백제에 대한 공격을 요청하면서, 10월에 웅천성 전투가 발생했다. 고구려의 움직임을 경계한 백제 조정은 빠른 시일 내에 관산성 전역을 끝내고자 했다. 사망 당시 성왕이 인솔했던 병력은 사비성에 주둔한 상비군 5천 명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왕은 계속된 전투로 백제군의 전투력이 저하된 시점에 사비성의 병력을 추가로 투입함으로써, 승리를 확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병력과 함께 전방으로 이동하던 성왕이 도중에 사망하면서, 관산성 전역은 백제의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In the mid-6th century, various incidents occurred in the process of the three countries competing for the Han River basin. The Battle of Doksanseong(獨山城), which took place in 548, was an incident in which Silla(新羅) dispatched salvation army after Goguryeo(高句麗) attacked Baekje(百濟)'s Doksanseong. Doksanseong was located in Yesan, Chungnam. In 541, Silla and Baekje formed a friendship, so they were able to dispatch the salvation army. The Battle of Dosalseong(道薩城) and Geumhyeonseong(金峴城), which took place in 550, was an incident in which Silla took two es independently during the clash between Baekje and Goguryeo. Geumhyeonseong was originally a Baekje castle, but it was occupied by Goguryeo, so Silla rejected Baekje's request to return Geumhyeonseong based on this, and even obtained Dosalseong based on Geumhyeonseong. Baekje targeted Dosalseong to prevent Silla's expansion, but it was geographically isolated as Silla took over Geumhyeonseong. Baekje inevitably handed over the Dosalseong to Silla, which was also influenced by diplomatic considerations to attract Silla to Goguryeo's invasion of Goguryeo. In 551, Silla and Baekje invaded Goguryeo. It was Baekje that led the invasion, and both countries seem to have moved forward around March 551. Silla troops were dispatched from Chungju, and it is presumed that they moved with Baekje troops until they attacked the area downstream of the Han River. When Baekje abandoned the area downstream of the Han River in 552, Silla first took over the Hanseong(漢城) area, and in 553, the operation of Shin-ju(新州) was begun. In particular, based on the improvement of relations with Goguryeo, it dominated the entire area downstream of the Han River from the beginning. Baekje recognized the improvement of relations between Silla and Goguryeo between September 551 and May 552, and the incident that occurred in the process was the Battle of Baekhabya(百合野) between Baekje and Goguryeo. Considering the situation at that time, it should be considered that the Battle of Baekhabya was between September 551 and May 552. After successfully targeting the lower part of the Han River, Baekje proposed a further attack on Goguryeo, but had to engage with it alone as Silla rejected the offer. In the meantime, Silla, which improved its relationship with Goguryeo, threatened Sabi Castle(泗沘城) with military force in Sang-ju(上州), and Baekje had no choice but to give up the area downstream of the Han River and return Baekje troops. In 553, King Jinheung(眞興王) married the King Seong(聖王)'s daughter. King Seong proposed marriage to hide the intention of invading Silla, and King Jinheung attempted to defeat Baekje's will to invade and pass the responsibility of the war on King Seong by carrying out a mutual inviolability pledge with the King Seong. The Campaign of Gwansansung(管山城) ran from July to December 554, the first battle of which was the Battle of Jinseong(珍城) in September. Silla troops tried to prevent Gaya and Baekje troops from gathering here, but failed. The Battle of Ungcheonseong(熊川城) broke out in October, as Silla, which was on the defensive due to the defeat of the Battle of Jinseong, called on Goguryeo to attack Baekje. Be wary of Goguryeo's movement, Baekje wanted to end the Campaign of Gwansansung as soon as possible. At the time of his death, it is possible that the troops led by the King Seong were 5,000 standing soldiers stationed in Sabi Castle. King Seong wanted to confirm the victory by sending additional reservists at a time when the fighting power of the Baekje Army was reduced due to continued fighting. However, when King Seong, who was moving forward with troops, died along the way, the Campaign of Gwansansung ended with the defeat of Baekje.

Ⅰ. 머리말

Ⅱ. 548~551년: 협력과 균열

Ⅲ. 552~554년: 충돌과 파국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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