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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백제문화 제42집.jpg
KCI등재 학술저널

만경강유역 마한 분묘의 전개 양상과 의미

The Development of Mahan Tombs in the Mangyeong River Basin

DOI : 10.34265/mbmh.202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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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유역권 마한분묘 문화의 변화는 마한 성립과 관련된 적석목관묘 및 토광(목관)묘 성행기, 분구묘 성행기, 백제 영역화 이후 분구묘 전통지속기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적석목관묘 및 토광(목관)묘는 마한 성립기의 중심묘제로 이 지역에 수많은 대규모 군집 토광(목관)묘 유적의 분포양상은 만경강유역권이 마한의 성립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지역이면서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었던 지역임을 보여주는 적극적 근거이기도 하다. 이들 집단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의 형성으로 토착세력의 계기적 발전 보단 새로운 집단 및 문화의 유입이 이 지역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분구묘는 토광(목관)묘가 성행하던 당시 이 지역에 출현하기 시작하여 백제 영역화 이후 완전한 백제계 문화로 교체가 이루어지는 6세기 중반 경까지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되어 온 마한의 중심묘제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독립적인 묘역을 갖고 단장의 형태로 기원전 2세기경 출현하여 점차 주구의 연접과 매장시설이 다장의 양상으로 변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확장을 통한 다장이 이루어지는 일련의 변화과정이 나타난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매장주체부 중심과 비매장주체부 중심의 다장 양상 등의 차이가 나타나며, 익산지역의 경우 완주 상운리 및 전주 장동과 같은 수평, 수직 확장의 양상이 확인되지 않는 지역적 특징이 관찰되기도 한다. 그리고 금강을 기점으로 하여 이남지역에서는 분구묘에 옹관이 결합하는 양상이 일반적으로 나타나면서, 대형 전용옹관의 등장은 이 지역의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분구묘 문화 또한, 이전 마한 성립기의 토광(목관)묘 문화와는 계기적인 발전과정과 계승성을 찾아 보기 어렵다. 다만, 분구묘 문화 역시 새로운 문화의 등장으로 볼 수 있지만, 전반적인 양상에서 보면, 문화가 일시에 유입되어 확산되는 양상보다는 토광(목관)묘 문화 이전의 토착세력의 문화와 연결성을 검토해볼 만한 요소가 확인된다. 이는 좀 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만경강유역권의 마한소국 양상을 단순히 주거 및 분묘의 고고자료만으로 파악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마한 성립기의 토광(목관)묘 단계에서는 유적 간에 위계 및 계층성은 확인되고 있지만, 아직 이 시기는 지역 내의 영역권을 구분하기가 어렵고 지역적 특징에 관한 관찰도 어렵다. 본격적인 마한 소국 단위의 정치체는 지역적 특징이 명확해지는 분구묘 성행 단계에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주거 및 분묘의 분포양상과 특징을 고려해 소국 단위까지는 아니지만, 영역권을 구분해 보면, 대략 10~11 개 영역권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어느정도 백제 때 군현 단위와도 유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Changes in the culture of Mahan tombs in the Mangyeonggang River basin can be divided into the period of prosperity of Jeokseok Wooden Tomb and the Tomb of the Tokwang (Mokgwan) Tomb related to the establishment of Mahan, the period of prosperity of the Bungu Tomb, and the period of traditional continuity of the Bungu Tomb after the Baekje Kingdom. Jeokseokmokgwanmyo and Tokwangmyo were central tombs during the establishment of Mahan, and the distribution of numerous large-scale cluster Tokwangmyo in this area is also an active basis for showing that the Mangyeonggang River basin was the most important area and center in relation to the establishment of Mahan. It can be said that the influx of new groups and cultures played a major role in the region rather than the instrumental development of indigenous forces due to the formation of a new culture different from before. Bungumyo is the central tomb of Mahan, which began to appear in the area when the earthenware tombs were prevalent and was used for a long time until the mid-6th century when it was replaced by a complete Baekje culture after the territorialization of Baekje. At first, it has an independent graveyard and emerges around the 2nd century B.C. in the form of a general, and gradually the connection of the main building and burial facilities change into a multi-section, and a series of changes occur through various types of expansion. However, depending on the region, there are differences in the multiple-place pattern centered on the burial subject and the non-burial subject, and in Iksan, regional features such as Wanju Sangun-ri and Jeonju Jangdong are not identified. In addition, in the southern region, starting with the Geumgang River, the appearance of a large-scale dedicated coffin is another characteristic of this region, as the pattern of the retaining tube is generally seen in the appearance of a large-scale dedicated coffin. In addition, it is difficult to find an instrumental development process and succession from the culture of the Tokwang (woodwind) Tomb during the previous Mahan period. However, the culture of the tomb can also be seen as the emergence of a new culture, but in general, factors that can be examined for the connection with the culture of indigenous forces before the Tokwang(wooden) tomb culture are identifiedrather than the introduction and spread of culture at once. This is also a matter that needs to be studied more. It is difficult to grasp the aspect of Mahan small country in the Mangyeonggang River basin area only with archaeological data of residential and tomb. However, hierarchies and hierarchies have been identified between remains in the earth mine (wooden) tomb stage during the Mahan establishment period, but it is still difficult to distinguish the territorial rights within the region during this period and to observe regional characteristics. It is believed that a full-fledged small Mahan-level political body will be possible in the stage of the prosperity of the tomb, where regional characteristics become clear. Considering the distribution patterns and characteristics of residential and tomb sites, it is estimated that the area can be divided into about 10 to 11 areas, which is somewhat similar to the county and prefecture units during the Baekje period.

Ⅰ. 머리말

Ⅱ. 만경강유역 마한 분묘의 현황

Ⅲ. 마한 분묘의 전개 양상과 특징

Ⅳ. 분묘를 통해 본 만경강유역 마한 소국의 양상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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