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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학과 충청문화 제35권.jpg
KCI등재 학술저널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과19세기 옥천 양남향약(陽南鄕約)

본고에서는 우암 송시열의 9세손으로 구한말의 거유이자 애국지사인심석재 송병순이 견지하고 시행했던 자정노선과 안남향약을 아울러 검토하였다. 이는 연재학파에 대한 연구를 다각화하기 위한 의도와 함께,연재 송병선 1인에 집중된 연구사적 추이를 보완하기 위한 의도를 반영해 준다. 이에 송병순이 시행한 양남향약을 가형인 송병선의 임피향약과 대비시키는 논의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임피·양남향약 간의 동이 양상과 더불어, 향약의 이름으로 연재학파가 접점을 형성한 장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송병순은 고향인 회덕현을 벗어나 몇 차례에 걸친 이거를 단행하였기에, 순차적으로 시도한 이동 경위와 과정을 우선적으로 소개하였다. 특히 옥천의 활산으로의 이동은 이른바 ‘포경입산(抱經入山)’으로 일컫는자정노선을 이행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송병순은 독서와 저술 및강학 활동으로 점철된 은둔 일상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양남향약절목>을 입안하였는데, 이는 그가 견지했던 ‘자강·자수론’의 기조에 따른 것이었다. 총 22항목으로 이뤄진 <양남향약절목>은 <여씨향약>에서 연원한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 네 강령과 매우 정합적인 배속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조선 향약 전래의 조약과 19세기의 사회상을반영한 절목들이 적절한 배합을 이루고 있는 특징도 포착된다. 예컨대환난상휼을 뒷받침하기 위한 절목의 경우, 율곡이 <해주향약>에서 제시한 7종의 환난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반면에, 덕업상권·과실상규 관련 절목에서는 이교(異敎)와 동학(東學)이 초래한 사회적 혼란상을 의식한 절목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어 대조를 연출하고 있다. 또한 예속상교 관련 절목에서도 변모하는 사회상을 반영한 조항들과 전래의 절목이 절충되어 있다. 임피향약과 마찬가지로 향약계에서 강학 활동을 중시한 점도 눈에 띄는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송병순이 입안한 <양남향약절목>의 경우, 당대 시국 인식과 연재학파의 학적 편린, 그리고 유학적 도를 위호하기 위한 자정노선과 자강·자수론의 이행 등과 같은 일련의 자취들이 감지되고 있기에,심석재가 일군 학문 세계를 연구하는 작업에서 매우 유익한 논의 거리로 평가된다.

This manuscript aims to diversify the research of Yeonjae school byexamining Self-Comfortism(自靖路線) simultaneously with Yangnam Hya-ngyak that Shim Seok-jae and Song Byeong-soon, the great Confucianscholars and patriots during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as the 9thgeneration of Uam(尤菴) Song Si-yeol(宋時烈). Getting out of Hoideok-hyeon(懷德縣), Song Byeong-soon changed addresses for several times, andespecially, movement to Hwalsan(活山) in Okcheon was for carrying outSelf-Comfortism to protect the way of Confucianism and drew up a planfor <Yannam yangyak Jeolmok(陽南鄕約節目)> while he was enjoying alife in seclusion with reading, writing and pursuing study. Composed of 22 items in total, <Yannam Hyangyak Jeolmok> shows avery well-matched relationship attached to four doctrines in <Yeossi Hya-ngyak>. Subdivisions that reflect Hyangyak handed down from the JoseonDynasty period and social aspect of the 19th century are forming appro-priate combination. And it is noticeable that subdivisions related to Deo-geopsanggwon(encouraging a good deed)·Gwasilsanggyu(restricting mis-conduct) that were conscious of social chaos caused by paganism(異敎)and Donghak(東學) are forming mainstream. Meanwhile, articles thatreflect changing social aspect are added to the subdivisions related toYesoksanggyo(building a friendship and practicing good manners). It isalso noticeable that it also put emphasis on the educational activities. In conclusion, <Yannam Hyangyak Jeolmok> planned by Song Byeong-oon is considered a very useful article of discussion in research of ShimSeok-jae as a series of trace such as awareness of situation of the time,academic part of Yeonjae school and nodal points of Self-Comfortism, Jasu(自修: putting efforts into a field of study without teaching fromothers)·agangron(自强論: The theory of national strenuous efforts) arediscovered.

Ⅰ. 머리말

Ⅱ. 옥천(沃川) 이거와 ‘동계(洞契)・자정노선(自靖路線)’

Ⅲ. 양남향약(陽南鄕約)의 체제와 특징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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