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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櫟庵 姜晉奎의 奏議類 산문 연구

A Study on Yeogam Kang Jin-gyu's Juui-ryu Prose

본고는 19세기 관료문인으로 영남 유림의 공론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姜晉奎의 奏議類 산문을 검토하였다. 강진규는 국내외의 역동적인 정세를 겪으면서 상소나 대책 등의 주의문을 공론 매체로 적극 활용하였다. 1862년 임술민란의 수습 과정에서 시행된 구언에 응하여 구폐 방안을 전개한「三政策」을 제출하였으며, 1881년 영남만인소의 疏草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강진규의 상소와 대책에는, 문체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모순된 현실을 핍진하게 묘사하며 격절한 수사로 주장을 서술한 양상이 확인된다. 강진규는 학문을 통한 지식 습득과 수양, 誠의 태도로 實을 성취할 것 등을 경세론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공사의 분별이 무너지고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세태를 경계하고, 탐오를 저지른 관리를 엄격히 처벌할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또한 『조선책략』의 주장에 적극 반박하며 서세동점의 시대에 전통적 가치와 良法美制를 굳건히 수호할 것을 주장하였다. 강진규의 주의류 산문은 이러한 19세기 전통 유림의 경세론과 공론 매체로서의 주요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의미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juui-ryu prose of Kang Jin-gyu, a 19th-century bureaucrat and writer who strongly influenced public opinion in Yeongnam area. Kang Jin-gyu experienced dynamic political situations at home and abroad and utilized juui-ryu prose, such as sangso and daechaek, as a medium for public discussion. In 1862, he submitted samjeongchaek in response to the advice implemented during the Imsul Millan and wrote the socho of Yeongnam Maninso in 1881. In his writing, Kang Jin-gyu was not bound by stylistic norms and presents critiques and arguments in a straightforward manner. Kang Jin-gyu believed that learning and cultivation, achieving ‘Sil(實)’ through an attitude of ‘Seong(誠)’ was the base of statecraft, and government should be wary of situations in which there are not clear divisions between public and private affairs, and corrupt officials should be strictly punished. He also refuted the claims of 『Joseon Strategy』 and insisted on firmly protecting traditional values and the beauty of the national system [良法美制]. Such writings of Kang Jin-gyu are prime examples of juui-ryu prose as a medium that shaped public opinion and 19th-century traditional Confucian scholars’ theory of statecraft.

1. 머리말

2. 강진규의 주의류 산문 개관

3. 주의류 산문의 서술적 특징과 경세론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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