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단극 질서는 상대적으로 러시아에 유익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정치 엘리트층은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여전히 불신, 우려와 분노가 섞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의 국력은 옐친 정권 하에서 급격히 하락하였으나, 21세기에 들어 푸틴 정권으로 넘어온 이래 꾸준히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러시아는 냉전기 하에서처럼 미국의 주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진정한 우방이나 전략적 동맹도 아니다. 이러한 위치에서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현 국제 질서에 있어 자신에게 맞는 역할과 위상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미국의 세계 정책에 내키진 않지만 조건부 공조를 하기도 하고, 요란스럽게 - 그렇다고 해서 항상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나 - 구소련 지역(near abroad)에 대한 자국의 사활적 국익을 보호하려 노력하기도 하고, 다극체제를 비호하거나 비재래식 무기의 확산 위협을 경시하고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미국 패권에 대한 저항세력과 동조하면서 미국의 전 지구적 영향력을 교모하게 사보타지하고 있다. 푸틴 집권 2기의 모스크바 정부는 (1) 유라시아 국가로서의 특이성에 대한 집착, (2) 강대국으로의 회귀 야망, 그리고 (3) 서방 강국의 실력 행사를 저지하는 가운데서도 서방의 자본과 기술을 활용하려는 현실-정치적인 실용주의를 골고루 고려한 정책을 시도하려고 하는 듯하다. (오늘날) 세계의 거시경제적 환경은 전반적으로 러시아에 우호적인 편이다. 물론 일부 도전 요인들도 대두되고 있기는 하다. 미국 달러의 약세는 - 러시아 수입업계와 소비계층을 이롭게 하고 수출업계와 생산업계를 어렵게 하면서, 또한 수입 물자에 대한 국내 소비를 부추기면서도 - 루블 가치를 안정화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갈수록 고갈되어가는 원자재와 자재 가격 급등은 러시아 자원(원유, 가스, 금속재) 수출 업계와 자원 추출 경제를 살찌우고 있다. 이로써 러시아 산업 다변화를 향한 시장의 동기를 약화시키고 있다. 상승세에 있는 세계 금융 이율은 러시아의 자본 유출을 도왔으며, 해외 부채 부담을 가중시켰고, 신규 투자 파이낸싱 비용을 높이기도 했다. 점차 퍼져나가는 지역 보호주의도 러시아산 공산품에 대한 시장 진입을 억제하는 경향을 띤다. 달리 말하면 국제 무역 추세가 러시아에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긴 해도, 러시아로서는 미국 주도의 국제 무역-금융 체제에 영입하면서 자국의 실리를 챙기기란 항시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현세계의 군사-정치적인 환경도 - 모스크바 정부가 의혹과 우려로 주시하는 일부 현상의 고착에도 불구하고 - 대체로 러시아에 대해 우호적인 편이다.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에서의 민주화 세력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에는 냉전 종식으로 사라져가던 국가안보 중시 체제가 시민사회가 위축되고 시민권-정치권이 위태로워지는 가운데 다시 등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상승 추세에 있는 신보수주의 물결은 ‘강한 정부 국가’의 재등장과 팽창을 조장하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도 제국주의적인 신권위주의 체제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러시아의 많은 정책결정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의 전방위 세계 지배는 갈수록 깊이 빠져드는 중동의 수렁으로 인해 제어 당했다. 전 세계적 모슬렘 성전(聖戰), 이라크의 저항세력, 아프가니스탄의 국제연대(Afghani International)는 미국의 세계 지배력(world supremacy)에 도전하였고, 지구촌에 산개해있는 미국의 자산을 소모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카프카즈 지방과 체츠냐 같은 러시아의 ‘무방비 취약 지역’이 극단주의자 와하비 세력의 영향력을 비껴나도록 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미국이 선제공격 독트린을 내놓고 세계 각지에서 일방적인 무력 사용을 감행함으로써 러시아도 자체 국익 방호 지역에서는 일방적이고도 자의적인 무력행사나 무력과시를 허용하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국제 환경이 조성되었다. 강대국이건 중강국이건 간에 상당한 군사력 증강을 추진해나가고 있고, 이는 러시아에서도 국방 지출 증대를 정당화하였으며, 경제-사회적 우선 과제로부터 정부 재정을 덜어와 군사력 현대화에 재할당할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 GPR계획에 따른 미군 해외기지 재조정이 이뤄짐에 따라 과거 냉전기 하의 주요 동맹체계(NATO,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이는 러시아로 하여금 유럽권과 아시아권에 있어 연기 자욱한 세력균형의 바다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선사해주었다. 1990년대의 전략적 휴식은 막을 내렸다. 자원과 영향력, 국제 위상을 둘러싼 새로운 강국들 간의 질주가 막 시작되었다. 세계의 문화-정치적 환경은 갈수록 분화되고 있으며 종교적이거나 민족적인 노선에 따라 대립 반목하고 있다. 과거 냉전기에나 볼 수 있었던 이념적 분열과 최근의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사회-경제적 관심은 반현대적이고 반서구적이며, 반미적인 사고들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 사고들은 편협하고도 급진적인 종교와 민족 세력들에 의해 제3세계권 개도국들에서 전파되었다. 미국 주도의 서방 대테러 연합은 전 세계적 테러 네트워크에 맞선 군사적, 법제적, 금융적인 전선에서 그 힘을 부분적으로 발휘했을 뿐 테러리즘에 대한 이념적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2001년 9월 11일 전세계를 뒤흔든 세계화의 역풍은 아직도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계를 재편하고 있다. 다수의 강력한 반국가 동인(動因)들이 전 세계의 민족국가들의 정통성과 우월성에 도전하고 있다. 문명 충돌 가능성에 대한 최악의 전망이 특히 포스트 모던의 모슬렘권에 대한 기독교 십자군 전쟁 발발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대두하고 있다. 이 현상은 종교적 근본주의와 민족 자결주의의 상승세를 동반하고 있으며, 테러가 불 지른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거친 행동을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맑시즘이 스러지고 자유주의가 위축된 가운데 “역사의 종말”은 막을 내렸고, 전 세계적 반테러전과 에너지 자원 선점을 둘러싼 강국들의 투쟁에 이끌려가는 국가안보 파라노이아의 탈탈냉전기 (포스트-9.11) 세계의 새로운 역사는 그 서막을 열고 있다.
Ⅰ. President Putin’s “Russia Modernization Project”
Ⅱ. Why and How Korea Matters
Ⅲ. Russia’s Stakes and Strategic Objectives on the Korean Peninsula
Ⅳ. Russia’s Approaches to Conflict Resolution in Korea
Ⅴ.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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