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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연구 제35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竹島자료공부회의 『메이지 10년 태정관 지령의 검증』에 대한 비판

①竹島자료공부회는 쓰카모토 다카시(塚本孝)의 논고를 토대로 하여 1877년 태정관이 일본과 관계없다고 지령한 ‘다케시마 외 일도’에는 오늘날의 竹島[독도]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쓰카모토의 논거는 내무성이 시마네현의 ‘다케시마 외 일도’의 지적에 관한 문의서를 심사했을 때 첫째, 오로지 다케시마(울릉도)만 심사하고 ‘외 일도’, 즉 마쓰시마를 심사하지 않았다, 둘째, 시마네현이 제출한 「원유의 대략(原由の大略)」을 채용하지 않았다, 셋째, 태정관은 그러한 심사를 승인했으므로 태정관 지령에 마쓰시마는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무성은 마쓰시마도 충분히 검토했으므로, 쓰카모토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②공부회는 태정관 지령 이전 일본 정부가 작성한 일본 지도는 모두 다즐레섬(울릉도) 위치에 마쓰시마를 그렸으므로, 일본 정부는 마쓰시마를 울릉도라고 인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본 지도는 1장도 확인할 수 없는 반면, 울릉도 위치에 다케시마를 그린 문부성의 지도 「대일본 대학구 전도」가 발굴되었다. 공부회의 주장은 옳지 않다. ③공부회는 ‘다케시마 일건(울릉도 쟁계)’을 조사한 『이소타케시마 각서』를 근거도 없이 에도 막부가 작성되었다고 보고, 메이지 정부의 다케시마・마쓰시마에 관한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이는 내무성 지지과가 여러 문헌을 비교・교정해 작성한 문헌이다. 이 문헌은 에도 막부가 다케시마를 포기하고, 마쓰시마를 다케시마의 속도처럼 보았음을 밝혔다. 이 문헌은 메이지 정부의 다케시마・마쓰시마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자료이다. ④공부회는 태정관 지령을 내무성에 대한 내부적인 지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거의 같은 취지를 가진 태정관 지령이 『태정류전』에 있다. 이는 전례・조규집이므로 원래 엄밀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안에서 ‘외 일도’를 찾으면, 이는 시마네현이 말하는 마쓰시마, 즉 오늘날의 독도밖에 없다.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 판도가 아니라고 지령했던 것이다.

① Based on Takashi Tsukamoto’s argument, the Takeshima Documents Study Group argued that today’s Takeshima [Dokdo] is not included in the ‘Takeshima and an other island’ that the Dajokan, namely the Japanese Government ordered in 1877 to be unrelated to Japan. Tsukamoto's argument is that when the Ministry of Home Affairs examined an inquiry from Shimane Prefecture regarding the compilation of the cadastral records of Takeshima and one other island, firstly, it examined only Takeshima (Uleungdo) and did not examine the other island, namely Matsushima, secondly, it did not adopt the “outline of origin” from Shimane Prefecture, and thirdly, because the Dajokan approved such an examination, Matsushima was not included in the Dajokan Order. However, the Ministry of Home Affairs also thoroughly examined Matsushima, so Tsukamoto's claim does not hold up. ②The study group argued that all Japanese maps made by the Japanese government before the Dajokan Order depicted Matsushima at the location of Dagelet Island (Ulleungdo), so the Japanese government recognized Matsushima as Ulleungdo. However, such map of Japan could not be confirmed. But the Ministry of Education's map “Complete Map of Great School District in Greater Japan(大日本大學區全圖)” depicting Takeshima at the location of Ulleungdo was found. The study group’s claim is not correct. ③The study group believed that the Isotakeshima Memorandum(礒竹島覚書), which investigated the ‘Takeshima Incident (Ulleungdo Dispute)’ in Edo Era, was written by the Edo Shogunate without any basis, and excluded it from the Meiji government’s recognition of Takeshima and Matsushima. However, this is a document prepared by the Topography Department of the Ministry of Home Affairs by comparing and correcting various documents. This document revealed that the Edo shogunate gave up Takeshima and viewed Matsushima as a belonging island to Takeshima. This document is material that reveals the Meiji government's recognition of Takeshima and Matsushima. ④The study group claimed that the Dajokan Order was an internal directive to the Ministry of Home Affairs. However, there is another Dajokan directive with almost the same meaning in Dajo Ruiten(太政類典). Since this is a collection of precedents and regulations, strict interpretation is possible. If you look for ‘one other islands’ within this, there is only Matsushima (namely Dokdo), as Shimane Prefecture calls it. Dajokan ordered that Ulleungdo and Dokdo were not part of Japan.

1. 머리말

2. 쓰카모토 다카시 「제2장 태정관 지령과 겐로쿠 기 일・조 교섭」에 대한 비판

3. 스기하라 다카시 「제3장 산인 지방의 역사에서 생각하는 태정관 지령 문제」에 대한 비판

4. 우치다 데루코 「제4장 시마네현의 지적 편찬과 다케시마 외 일도 지적 편찬 문의」에 대한 비판

5. 竹島자료공부회 「제5장 당사자의 인식(태정관 및 내무성)에서 본 ‘다케시마 외 일도’」 및 「제1장 일본해 내 다케시마 외 일도 지적 편찬 문의」에 대한 비판

6. 마쓰자와 간지 「제6장 메이지 10년 ‘태정관 지령’ 당시의 정치정세」에 대한 비판

7. 야마자키 요시코 「제7장 메이지 16년 태정관 내달(内達) 검토」에 대한 비판

8. 후지이 겐지 「제8장 한국의 竹島 영유 주장과 태정관 지령」에 대한 비판

9.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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