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서는 갑오개혁 이후 설치되었던 감옥서가 대한제국기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이 시기의 감옥서가 근대성을 지향했지만 한계를 보였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성의 경우 1902년 감옥서장 김영선의 제안으로이례적인 높은 비용과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하여 기존 전옥서 부지에 새로운감옥서가 세워졌다. 지방의 경우 조선시대 ‘옥’을 그대로 쓰거나 수리·확장하는경우가 많았지만, 강화 교동도에 ‘감옥서’를 신설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대한제국기 「감옥세칙」 공포 이후 감옥서 관리들은 이를 시행하기 위해 노력했고, 죄수 진료에 관한 「병원세칙」 공포 이후 감옥서 내 의사가 파견되어 죄수를진찰하고, 무료로 약을 처방했다. 하지만, 신 감옥서는 공간상의 한계를 겪게 되었고, 운영에 예산 문제를 겪게되었다. 이 문제는 ‘사면’을 통해 죄수의 수를 의도적으로 유지하거나, 죄수들로부터 돈을 받고 석방하는 ‘속전’을 확대하여 해결했다. 이는 조선시대 전옥서와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공간과 예산 문제는 경성감옥이 개소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감옥 개소에 앞서 감옥서장은 해임되었고, 간수장 일부는 계속해서 그 업무를 수행했다. 압뢰들을 순검으로 대체하고, 순검은 다시 간수로 대체되는 등 감옥서 제도는 폐지 수순을 거친 후 1908년 경성감옥이 개소했다.
This study aims to how the Gamokseo(監獄署), which was established after the Gapo Reform(甲午改革), operated through the Korean Empire to see how the Gamokseo of this period, while aiming for modernity, showed its limitations. The New Gamokseo was limited by space and faced budgetary problems in its operations. This problem was solved by artificially maintaining the number of prisoners through amnesty(赦免) or by expanding the bail(贖錢) of prisoners. This was no different from the Joseon Dynasty’s Jeonokseo(典獄署). These problems were one of the reasons behind the opening of Gyeongseong Prison(京城監獄).
1. 머리말
2. 감옥서 건물 설치와 운영
3. 운영상 문제점과 경성감옥으로의 변화
4.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