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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연구 제107집.jpg
KCI등재 학술저널

6·10만세운동 관련 중등학교 학생들의 동맹휴학

1920년대에 중등학교 동맹휴학은 1926년 6·10만세운동을 겪은 후 그 영향으로 이듬해부터 건수가 대폭 늘어나 이후 1920년대 말까지 계속 증가했다. 1926년 4월 25일 융희황제의 승하 직후 학생들은 먼저 보통학교에서 전국적으로 동맹휴학을 일으켰다. 융희황제 승하 후 학교들은 조선총독부의 지시에따라 주로 일본인 교원의 주도 아래 학생들의 망곡과 봉도식을 거행하거나 이를 억제했는데, 이에 학생들은 학교 측에 대항하며 동맹휴학을 단행했다. 6·10만세운동이 일어난 이후 마치 바통을 넘겨받듯이 1926년 6월 중순부터는 각지의 중등학교에서 동맹휴학이 연달아 일어났다. 6·10만세운동에 동조해중등학교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일으키면, 학교 측에서는 이에 대한 제지나 처벌을 강화했고, 이에 학생들이 교원을 배척하면서 동맹휴학을 진전시키는 수순을보였다. 융희황제 승하와 6·10만세운동은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 민족문제가 단순히 교내 문제가 아니라 조선독립과 관련된 문제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특히 서울에는 수많은 학생조직이 있었으나 지방에는 그런 조직이 별로 없던 상황에서, 지방의 학생들은 주로 동맹휴학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Immediately after the death of Emperor Yunghui on April 25, 1926, elementary school students first went on nationwide strike. After the death of Emperor Yunghui, schools, under the direct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Chosun, mainly led by Japanese teachers, held or suppressed students’ funeral and memorial ceremonies, and the students rebelled against the school and went on strike. After the June 10th Independence Movement took place, a series of students’ strike occurred in middle schools in various regions from mid-June 1926. When middle school students sympathized with the June 10th Independence Movement and went on strike, the school strengthened restrictions and punishments, and the students showed steps to advance the strike by ostracizing teachers. The death of Emperor Yunghui and the June 10th Independence Movement made elementary and middle school students realize that the national issue was not simply an issue within the school, but an issue related to Chosun independence.

1. 머리말

2. 1920년대 동맹휴학의 양상

3. 1926년 동맹휴학의 특성

4. 6·10만세운동 관련 중등학교 동맹휴학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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