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북악사론 제19집.jpg
KCI등재후보 학술저널

18세기 全州地域 주요 士族家門의 動向

조선시대 전주는 전라도의 수부인 동시에 왕실의 발상지라는 연유로 조선의 개창과 더불어 중시되었다. 이에 본고는 전주와 그 관할구역으로 편제된 전주지역의 주요 사족가문이 18세기 탕평 정국하에서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에 대하여 정계 진출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5세기 그 성세가 주목되는 사족가문은 전주최씨, 전주이씨, 전주유씨, 여산송씨 등의 土姓과 移姓인 문화유씨 가문 등이며, 16세기에는 여말선초를 전후하여 이 지역으로 이거한 전의이씨, 진주소씨, 나주나씨, 동래정씨 등이 새롭게 주요 사족가문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전의이씨와 진주소씨 두 사족가문은 각각 이계맹과 소세량·소세양 형제라는 걸출한 인재를 배출하면서 지역 사회 사림계 확산에 기여하였으며, 호남사림의 정계 진출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17세기 들어서도 전의이씨와 진주소씨가문은 이 지역의 가장 주목할 만한 사족가문으로 활동하였으며, 새로운 이거 사족가문으로 한산이씨와 진천송씨 가문이 전주지역의 주요 사족가문의 대열에 합류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는 18세기 들어 탕평정치라는 새로운 정치이념이 등장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정치상황이 전개되었다. 이 지역의 사족사회 구성원들 역시 정계에 진출한 후 각자 자신의 정치적 판단과 소신에 따라 활동하였다. 18세기 전주지역 주요 사족가문의 범주를 확인하기 위해 주요 사족가문을 도출해 보자면, 사족가문별 문과 급제 현황과 湖南邑誌 인물항 등재, 그리고 서원·사우 제향 현황을 종합하여 토성 3가문과 이성 4가문 총 7개 가문으로 집약해 볼 수 있다. 이 7개 가문 중에서 정계에 진출하여 구체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전의이씨, 진천송씨, 도강김씨, 남양홍씨 가문 등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18세기 전주지역 사족가문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가문은 전의이씨 가문으로 무려 7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이들은 전주 입향조인 창수 계열의 후손으로서, 관직 진출 초반에는 대체로 언관직을 역임하였고 이후로는 近侍職인 승지와 인사 실무를 관장하는 이조참판을 역임하는 등 정국의 주요 현안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목산 이기경은 도암 이재의 문인으로 영조의 탕평책과 인사정책을 비판하고 의리탕평을 견지하였으며, 급기야는 영조의 裕昆錄을 비판한 죄로 유배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외에도 음악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이연덕과, 정조대 실무관료로 활약한 이성억 등의 활동에 주목할 수 있다. 다음으로 진천송씨와 도강김씨 역시 각각 4명과 3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면서 이 시기 전주지역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자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표옹 송영구의 후손인 송수형은 국왕 영조로부터 뛰어난 실무관료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한편 도강김씨 가문은 비록 현달한 인물은 없지만 김도언이 무신란 당시 반란군의 핵심 인물을 제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우면서 양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그의 공으로 인해 도강김씨 가문은 18세기에도 태인을 대표하는 유력 사족가문으로서의 성세를 이어 나갔다. 한편 남양홍씨 가문은 2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는데 그쳤지만, 그 중 한 인물인 담와 홍계희가 영조대 경세가로서 청계천 준천사업과 균역법의 제정을 사실상 주도하면서 18세기 정계에 진출한 전주지역 출신 인물 중 가장 주목할만한 활약을 펼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18세기 전주지역 주요 사족가문은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문과 급제와 고위 관료로의 진출, 정계와 지역의 유력 사족가문과의 혼맥 등을 통해 가문의 성세를 이어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추후 각 가문별 사례에 대한 새로운 자료 발굴과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사족가문의 동향과 그것이 갖는 의미를 해명해 보고자 한다.

During the Joseon Dynasty, Jeonju was considered important with the founding of Joseon because it was the head of Jeolla-do and the birthplace of the royal family. Accordingly, this study examined the activities of the major prestigious families in the Jeonju region, organized into Jeonju and its jurisdiction, under the Tangpyeong political situation in the 18th century, focusing on their activities to enter politics. The prestigious family whose prosperity is notable in the 15th century includes the Jeonju Choi, Jeonju Lee, Jeonju You, and Yeosan Song who were natives, and the Munhwa Yoo who were immigrants. In the 16th century, Jeonui Lee, Jinju So, Naju Na, and Dongrae Jeong who moved to this area around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and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emerged as new major prestigious families. In particular, the two prestigious families, the Jeonui Lee, and the Jinju So, produced outstanding talents such as Lee Gye-maeng and the So Se-ryang, So Se-yang brothers contributing to the spread of Sarim in the local community and played the leading role of Honam Sarim’s entry into politics. Even in the 17th century, the Jeonui Lee and Jinju So families were the most active prestigious families in the region, and we can see the Hansan Lee and Jincheon Song families, as the new immigrant prestigious families, joining the ranks of the major prestigious families in the Jeonju region. In the 18th century, the Joseon Dynasty faced a political situation that was different from before with the emergence of a new political ideology called Tangpyeong politics. After entering politics, members of the prestigious society in this region also acted according to their own political judgments and beliefs. To identify the categories of the major prestigious families in the Jeonju area in the 18th century, investigated the status of civil service examinations for each prestigious family, the listing of people in the 『湖南邑誌』, and the status of Seowon and Sawoo’s ancestral rites to identify 3 native families and 4 immigrants families. It can be summarized into a total of 7 families. Among these 7 families, the argument was developed focusing on the Jeonui Lee families, Jincheonsong families, Dogang Kim families, and Namyang Hong families which can be seen to have entered politics and been active in detail. Among the prestigious families in the Jeonju region in the 18th century, the particularly noteworthy family is the Jeonui Lee family, which produced as many as seven people who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 They are descendants of the Changsu, and at the beginning of their careers, they generally served as civil servants. Afterward, they actively participated in making decisions on major political issues, such as serving as Seungji, a myopic position, and as Ijochampan, who oversees personnel affairs. In particular, Moksan Lee Ki-gyeong, a writer of Doam Lee Jae, criticized King Yeongjo's policy of tangpyeong and personnel policy and maintained Euli Tangpyeong, and was eventually sent into exile for criticizing Yeongjo's 『Yugonrok』. In addition, we can pay attention to the activities of Lee Yeon-deok, who was recognized for his outstanding ability in the field of music, and Lee Seong-eok, who played an active role as a government official during King Jeongjo's reign. Next, the Jincheon Song and the Dogang Kim also produced four and three people who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respectively. So, they were positioned as a prestigious family in the Jeonju area during this period. In particular, Song Su-hyeong, a descendant of Pyoong Song Yeong-gu, was recognized by King Yeongjo for his ability as an outstanding government official. On the other hand, although the Dogang Kim family did not have any wise men, Kim Do-eon made a great contribution in subduing the key figures of the rebels during the Musin Rebellion and was listed as the 1st class Yangmuwonjong Gongsin.

Ⅰ. 머리말

Ⅱ. 15~17세기 전주지역 주요 사족가문의 동향

Ⅲ. 18세기 주요 사족가문의 범주

Ⅳ. 18세기 주요 사족가문의 동향

Ⅴ. 맺음말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