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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후보 학술저널

소죽 임병직의 미주지역 독립운동

임병직은 1913년 미국 유학을 가서 1949년에 귀국을 하였다. 임병직의 일생은 서울 YMCA에서 처음으로 이승만을 만났고, 그로 인연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1919년 3월 우리 민족이 독립을 선언한 이후부터 이승만를 따라서 구미위원부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임병직은 1920년 12월 이승만과 함께 중국 상하이에 갔고, 1925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구미위원부 폐지령이 내릴 때까지 이승만을 보좌하였다. 그리고 1941년 12월 일제가 미국에 전쟁을 도발하자, 임병직은 워싱턴으로 가서 주미외교위원부에서 이승만을 도와 대미외교 활동을 펼쳤다. 1942년 9월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이승만은 임병직을 무관보(military attache)로 임명하고 로스앤젤레스에 파견하였다. 임병직은 대외적 활동을 위해 군복을 입고 대령이라는 직책으로 직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그를 ‘벤 대령(Colonel Ben)’이라고 불렀다. 임병직은 1919년부터 해방 이후까지 이승만을 보좌하며 독립운동을 함께 하였다. 이승만의 미국에서 독립운동에는 늘 임병직과 함께 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임병직의 독립운동은 이승만 독립운동의 그림자인 셈이다. 임병직은 자신의 활동이 민족의 독립에 일조한다는 신념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임병직은 3·1운동 이후 이승만의 비서로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해방 이후 이승만정부에서 외무부장관·유엔대사 등을 역임하는 등 평생을 그와 같이 하였다.

Ben C. Lyhm(Lyhm Beng Chik) studied in the United States in 1913 and returned home in 1949. Ben C. Lyhm's life met Syngman Rhee for the first time at the YMCA in Seoul, and he met him and went to the United States to study. In addition, after the Korean people declared independence in March 1919, Ben C. Lyhm followed Syngman Rhee in the Korean Commission to America and Europe for the Republic of Korea. Ben C. Lyhm went to Shanghai, China, with Syngman Rhee in December 1920, and assisted Syngman Rhee until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issued an order to abolish the the Korean Commission to America and Europe in March 1925. And in December 1941, when the Japanese provoked war against the United States, Ben C. Lyhm went to Washington D.C. to help Syngman Rhee at the Korean Commission and conducted diplomatic activities with the United States. In September 1942, Syngman Rhee, chairman of the Korean Commission, appointed Ben C. Lyhm as a military attache and dispatched him to Los Angeles. As Lim performed his duties as a colonel for external activities, Americans called him ‘Colonel Ben’. Ben C. Lyhm supported Syngman Rhee from 1919 to the post-liberation and worked together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fact, Ben C. Lyhm’s independence movement is a shadow of Rhee Syngman's independence movement because he was always with Ben C. Lyhm in the United States. Ben C. Lyhm can see his sincerity in doing his best in everything with the belief that his activities contribute to the independence of the nation. Ben C. Lyhm participate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as Syngman Rhee's secretary after the March 1st Movement and spent his entire life in the Syngman Rhee government, serving as th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and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Ⅰ. 머리말

Ⅱ. 도미유학과 제1차 한인회의

Ⅲ. 구미위원부와 임시정부에서의 활동

Ⅳ. 태평양전쟁기의 외교활동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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