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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연구 제28권 제2호.jpg
KCI등재후보 학술저널

함북 탄광 광부 강제 취업 문제를 통해 살펴본 1930년대 초 이재민 대책의 문제점

Problems of the Relief Measures for Flood Victims in the Early 1930s- Focused on the Forced Employment of Coal Miners

DOI : 10.56475/ygsrc.2023.2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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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조선총독부는 이재민 구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는데, 1919년 극심한 가뭄을 겪은 후 구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후 일제는 긴급 구호 성격의 직접 구제, 재해복구공사에 이재민을 인력으로 동원해 임금을 살포하는 방식의 간접 구제, 취업 지원을 내용으로 한 ‘생업 부조’ 방식으로 이재민 구제에 나섰다. 일제는 이 가운데 특히 간접 구제에 더 많은 돈을 투입하였다. 그런데 간접 구제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재해 복구는 사실상 이재민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활용해 토목청부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일제는 1930년대 전반기에 접어들어 ‘생업 부조’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재민을 북부 지방 유연탄 광산의 광부로 대거 취업시켰다. 사실 1910~20년대 유연탄을 생산하는 광산의 경영 상태는 나빴다. 유연탄 탄광은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아 수송비가 지나치게 많이 드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이윤을 거두기 힘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일제는 유연탄 탄광을 운영하는 일본인 경영자를 돕기 위하여 이재민을 대거 그 탄광의 저임금 광부로 취업하게 강요하였다.

In the 1910s,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not only failed to properly take measures to relieve the disaster victims, but also did not have the will to do so. After experiencing a severe drought in 1919, it began to prepare relief measures. Afterwards, Japan began providing relief to the victims through ‘Direct Relief’ in the form of emergency relief and ‘Indirect Relief’ by mobilizing victims as workers for ‘Disaster Recovery Projects’ and distributing wages to them, and ‘Livelihood Assistance’ through employment support. The Japanese government especially invested more money into ‘Indirect Relief’. However, disaster recovery implemented in the name of ‘Indirect Relief’ actually resulted in the enrichment of civil contractors by using the victims as low-wage labor. Meanwhile, in the first half of the 1930s,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employed large numbers of victims as miners in bituminous coal mines in the northern region. In fact, the management of mines producing bituminous coal in the 1910s and 1920s was poor. Bituminous coal mines were located in places with inconvenient transportation, so they had the problem of high transportation costs, which made it difficult to make a profit. In order to help Japanese managers who operated bituminous coal mines, the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forced many of the victims to work as low-wage miners at the coal mines.

Ⅰ. 머리말

Ⅱ. 이재민 발생과 조선총독부의 ‘간접 구제’ 방침

Ⅲ. 1930년대 이재민의 광부 강제 취업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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