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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철학 제37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악과 양심

리꾀르를 통한 아렌트 읽기

필자는 악을 양심을 통해 읽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히만의 악을 아렌트와 다르게 보고자 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아렌트가 말한 평범악이 무가치한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 그리고 학계에 평범악에 대한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그것은 여러 가지로 학계나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 무사유로서의 악에 멈추지 말고 양심이 정치적 권력 앞에서 바로 작동하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악에 대한 대안 제시가 필요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필자의 대안 제시는 양심의 바르게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바로 아이히만이기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우리에게는 양심의 바른 작동 이야기를 할 기회가 허락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철학은 무사유와 같은 사유의 명석판명 또는 절대 의식 등에 전념했다. 그것보다 이제는 양심에 대해 이야기할 때이다. 악행을 저지하는 게 사유이기도 하지만, 양심이기 때문이다. 평범악 만큼이나 평범한 양심을 경고해야 한다. 양심의 가치는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가 살면서 발생하는 많은 악행과 잘못을 사람들이 무사유 때문이라 하는가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 하는가.

In this article, I read evil through conscience to propose an alternative to Arendt’s understanding of Eichmann’s evil. Arendt’s concept of the “banality of evil” has had a profound impact on society and academia by evoking a number of meaningful discussions on the subject of evil. A necessity for further analysis of evil arises, however, when we consider the evil which comes from conscience malfunctioning in the face of political power. An alternative to Arendt’s analysis is presented in order to raise awareness of conscience losing its proper function as in the case of Eichmann. Prior discussions in philosophy have focused on the clear determination of reason such as “non-thought” or absolute consciousness. Committing evil, however, is not only tied to reason, but also conscience. Making room for further discussions on how conscience - when properly working - can prevent evil, seems reasonable. Much of the evil in our lives may occur due to the “banality” (lack of) conscience, rather than the “banality of evil” based on irrationality as in Arendt’s philosophy.

Ⅰ. 들어가는 말

Ⅱ. 악

Ⅲ. 양심

Ⅳ.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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