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오렌지>의 폭력 재현은 개봉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영화의 장면 장면을 살펴보면 동시대의 다른 영화, 즉 <악령들>(1971, 켄 러셀)이나 <어둠의 표적>(1971, 샘 페킨파) 같은 영화에 비해 결코 특별히 더 폭력적이거나 잔인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동시대의 어떤 다른 영화보다도 폭력성을 이유로 비판받은 까닭은 무엇일까? 몇몇 학자들은 1971년 당시의 사회문화적 컨텍스트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예술적 표현에 관해 자유로웠던 1960년대 분위기를 이어받아 만들어졌지만, 다소 보수적인 1970년대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1960년대에 대두되기 시작한 영화작가론으로 인해, 모방범죄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도 작가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분위기 속에서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여러 공적 매체에서 공개적으로 비판과 토론이 이어지면서, <시계태엽오렌지>는 영화의 폭력 재현을 논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작품이 되었다. 본고는 큐브릭이 폭력의 ‘미화’하였다는 오명을 쓴 이유를 작품 외적인 데에서 찾기 보다는 작품을 꼼꼼히 읽고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큐브릭이 구현하고 있는 폭력의 재현을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폭력을 미적으로 재현하는 동시에 그것에서 거리를 두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폭력 중, 알렉스가 저지르는 폭력 부분이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이라 비판받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늙은 노숙자를 구타하는 장면, 빌리보이 갱과의 싸움, 알렉산더 부부를 강간, 폭행하는 장면, 딤과 조지에게 대장이 누구인지를 가르치는 장면, 캣 레이디를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장면 등을 각각 자세히 관찰해보면 개별적인 특징 뿐 아니라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폭력적인 영상 이미지와 상반되는 경쾌한 음악을 사용하여 아이러니를 창출해내고 있다는 점, 연극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세팅, 또는 기존 할리우드 장르영화 관습에 대한 비뚤어진 헌사를 통해 폭력 장면을 현실의 것이 아니라 허구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 그리고 슬로우모션, 살해 순간을 팝아트 쇼트로 대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미지를 분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큐브릭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화면상의 폭력과 관객 사이에 거리 두기이다. 반면, 국가가 행하는 폭력, 알렉스에게 당했던 자들의 복수, 상상/환상 시퀀스 속의 폭력에서는 폭력 장면의 영상 이미지와 상반되는 음악의 배치로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는 등장하지 않는다. 국가의 폭력 부분에서는 이제는 역할이 전도되어 피해자의 역할을 무대 위에서 맡고 있는 알렉스를 보여주면서 또 다른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루도비코 센터에서 잔인한 전쟁과 학살 장면들을 강제로 보며 세뇌를 당하는 알렉스를 보여줄 때는 이전에 사용했던 거리 두기의 장치들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어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을 관객들로 하여금 간접 경험하게 한다. <시계태엽오렌지>에서 폭력 재현의 관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영화 속에서 폭력을 대하는 큐브릭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큐브릭은 영화가 이야기하는 도덕적 교훈, 즉 인간의 자유의지의 중요성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알렉스의 폭력 장면에 힘을 실었다. 알렉스의 악행이 더할수록, 그에 대한 벌로 당하게 되는 세뇌가 더더욱 비인간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알렉스가 행한 폭력과 국가에 의해 알렉스가 당하는 폭력을 대비하여 보여주는 데에 미묘한 균형감각을 발휘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본고는 ‘폭력의 미화’로 오인받기 쉬운 <시계태엽오렌지>에서의 폭력의 미적 재현과 그 방식을 다시금 관찰하여, 큐브릭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 중요성’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하여 ‘인간의 폭력성’을 강력한 소재로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폭력 재현과 관객 사이에 그가 심어둔 거리 두기의 장치들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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