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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19세기 서원철폐 이후, 전북의 서원·사우 건립 현황과 그 양상

고종의 즉위로 정권을 장악한 대원군은 1868년에 서원을 철폐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전국 47개의 서원과 사우를 남기고 600여 개의 서원을 철폐하는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철폐된 서원의 상당수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복설되었다. 전북에는 165개소의 서원과 사우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무성서원을 제외한 서원과 사우가 철폐되었고 그 가운데 96개가 복설되었다. 1868년~1910년 사이에 19개소가 복설되었고, 일제강점기에 18개소가 복설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59개소가 복설되었다. 해방 이후에 철폐된 서원의61.4%가 복설되었다. 서원이 철폐된 지 100여 년이 지난 20세기 중반에 상당수의 서원이 복설되었다는 점은 지역에서 서원이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남원과 임실, 순창의 서원 복설과 신설 상황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남원은 철폐령이 내려지기 이전에 전북에서 서원과 사우가 가장 많이 건립된 곳이다. 남원과 한 권역이라고 할 수 있는 임실은 두 번째로 많은 서원과 사우가 건립되었다. 남원과 임실에 건립된 서원과 사우는 165개 중 53개로 32.1%에 이른다. 그런데 이곳의 서원 복설 비율은 가장낮다. 특히 서원을 한 곳도 복설하지 않은 순창까지 포함하면 ‘임순남[임실·순창·남원]’의 평균을 밑도는 16.6%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복설 비율은 장수와 진안, 익산, 김제 군산, 고창 등 75%를 상회하는 지역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이와 같은 지역적 편차에 주목하여 서원 복설을 주도한 집단의 성격 등에 대한 구체적, 실증적 연구를 통해 20세기 지역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신설된 서원과 사우도 지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하여 그 시대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원 철폐이후 전북에 신설된 원우는 96개소이다. 서원의 신설도 복설과 비슷한 추세로, 복설 비율이 높은 고창, 정읍, 진안, 김제, 익산에서 많이 신설되었고, 서원복설 비율이 낮은 남원과 임실에서는 신설 비율도 낮다. 이러한 추세와 편차를 단서로 20세기에 건립된 서원과 사우에 투영된 시대상을 밝히고 서원과 사우의 현재적 역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Daewongun, who had seized power upon the accession of King Gojong, ordered the destruction of Seowon in 1868 and promoted a policy to destroy more than 600 Seowon, leaving only 47. However, many of the destroyed Seowon and Sawoo had been rebuilt after Japanese colonial era and liberation. 165 of Seowon and Sawoo are estimated to be built in Jeonbuk, of which 96 were rebuilt except the unbroken Museongseowon. Between 1868 and 1910, 19 places were rebuilt and 18 places were rebuil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fter liberation, 59 places were restored, and 61.4% of the rebuilt Seowon and Sawoo were built after liberation. In Short, the reconstruction of Seowon and Sawoo in the mid-20th century, more than 100 years after the destruction, is thought to have great implications for grasping the status and meaning of Seowon and Sawoo in the region. From this point of view, it is necessary to closely examine the reconstruction and establishment of Seowon in Namwon, Imsil, and Sunchang. Namwon is the place where Seowons were built the most in Jeonbuk before the decree was issued. Imsil, which shared the border with Namwon, was the secon d largest n umber. There are 53 of 165 Seowon s built in Namwon and Imsil, accounting for 32.1%. However, the rate of reopening Seowon here is the lowest. In particular, if Sun chan g, which has n o rebuilt Seowon , is in cluded, it is only 16.6%, which is below the average of ‘Im-Sun-nam’(Imsil, Sunchang, Namwon). This rate of reconstruction is remarkable when compared to regions exceeding 75% such as Jangsu, Jinan, Iksan, Gimje, Gunsan, and Gochang. By paying attention to these regional deviations, it is expected that the locality of the 20th century will be grasped by studying the group which led to rebuild Seowon. After Japanese colonial era and liberation, newly built Seowons were also built in Gochang, Jeongeup, Jinan, Gimje, and Iksan, where reconstruction rates were high, while Namwon and Imsil, which had low reconstruction rates, were also poorly established. If research on these trends and deviations is continued from the perspective of local history, it will be possible to reveal the times reflected in Seowon and Sawoo, which were reconstructed or newly established in the 20th century, and to present the current role of Seowon in the context of continuity.

Ⅰ. 머리말

Ⅱ. 전북의 복설 서원・사우 현황과 성격

Ⅲ. 전북의 신설 서원・사우 추이와 양상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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