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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러일전쟁 발발 후 대한제국내 동향과 공주 진위대(公州鎭衛隊) 사건

1904년 러일전쟁 개시 후 한반도 전역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전쟁 수행과철도 건설에 투입된 일본인이 증가하면서 각지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충돌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대부분의 사건은 일본인의 횡포나 절도, 폭행, 살인 등 범법 행위로 일어난 것이었다. 일본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한국내 민심과 동향을 주시했다. 일본은 한국민과 일본인의 갈등 원인을 한국인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했으나 일본인에 의한 절도, 폭행, 살인 사건 등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과 그에 따라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커지고 있다는사실을 인지하였다. 일본은 충돌이 빈발하는 지역에 순사주재소를 증설하거나주차군을 파견하여 ‘치안’을 유지하려 했다. 1904년 9월, 충청남도 공주에서 일어난 ‘진위대 사건’도 당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과 유사한 성격이었다. 즉 한국인과 공주 거류 일본인 칸 신타로가 사소한 시비로 쌍방 폭행한 사건으로 부상 정도나 피해 규모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사건에 연루된 한국인들이 공주진위대 병사라는 점과 한국정부가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서슴지 않았다. 사건 발생 직후 일본은 한국주차군을 파견하여 진위대 병사들을 체포하여서울로 압송했다. 한국정부는 일본군을 파견함으로써 공주 지역의 민심이 동요할 우려가 있으며, 파견 일본군이 진위대 병사를 압송한 것에 대해 한국의국체를 손상하는 행위라고 일본측에 항의하는 한편 상황을 진정시키고자 외교적 교섭을 진행했다. 이후 약 3개월간 한일 양측은 진위대 군사 처벌 문제와 배상금 등을 둘러싸고 갈등했지만 사건에 연루된 진위대 병사들을 처벌하고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일본은 한국을 일본의 세력하에 두기 위해 군사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것뿐 아니라 대한제국 군대를 축소하고 최종적으로는 해산시켜 일본의 군사력에 완전히 의존하게 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일본은 이러한 계획을추진하려던 차에 공주에서 진위대 병사가 연루된 사건이 발생하자 개인간의사사로운 시비와 폭행이라는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게 군사적으로 강경 대응하는 한편 한국군의 ‘무용’을 입증하는 사건으로 몰아가며 대한제국 정부를압박했던 것이다.

After the start of the Russo-Japanese War in 1904, as Japanese troops were stationed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and more Japanese were employed in the military operation and railway construction, clashes between Koreans and Japanese occurred frequently. Most of the incidents were caused by Japanese domination or criminal acts such as theft, assault, and murder. In order to conduct the war efficiently, Japan monitored public sentiment and trends in Korea. While the Japanese often blamed Koreans for conflicts between Korean and Japanese, they recognised that the number of thefts, assaults, and murders committed by Japanese, and anti-Japanese sentiment was growing among Koreans. Japan attempted to maintain “security” by increasing the number of police stations or dispatching Japanese garrison to areas where conflict was common. The “Jinwidae(鎭衛隊) Incident” in Gongju, Chungcheongnam-do, in September 1904, was similar in nature to incidents elsewhere at the time. In this case, a Korean and a Japanese resident of Gongju, Kan Shintaro, assaulted each other over a minor argument, resulting in minor injuries and damage. However, Japan used the fact that the Koreans involved were soldiers in the Gongju provincial army, Jinwidae and Korean government’s failure to act quickly as a pretext for military intervention. Immediately after the incident, Japan dispatched the Japanese garrison to arrest the soldiers and bring them to Seoul. The Korean government was concerned that the dispatch of Japanese troops would stir up public atmosphere in the Gongju area, and protested to Japan that the Japanese troops' arrest of the Jinwidae soldiers was an act that damaged Korea's national integrity, and engaged in diplomatic negotiations to calm the situation. For the next three months, Korea and Japan argued over the issue of punishment and compensation, but the two sides settled on punishing the Jinwidae soldiers involved in the incident and paying compensation. In order to bring Korea under Japanese power, Japan was pursuing a plan to not only win the war militarily, but also to reduce and eventually disband the Korean Army, making it completely dependent on Japanese military power. As Japan was movin g forward with these plan s, an in ciden t in volvin g a Jinwidae soldier in Gongju occurred, and regardless of the nature of the incident, which was a private quarrel and assault between two individuals, Japan responded militarily, spinning it as a demonstration of the “uselessness” of the Korean army.

Ⅰ. 머리말

Ⅱ. 러일전쟁 발발과 한국내 동향

Ⅲ. ‘공주 진위대 사건’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개입과 한국정부의 대응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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