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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논총 제85집.jpg
KCI등재 학술저널

나말려초 鳳林山門의 형성과 분화

신라말~고려초는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였다. 정치적으로分國의 상황이 연출되고 곳곳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으며, 재지 유력가들은 세를 불려 정치적 大勢를 잡고자 하였다. 그 가운데 지방 농민들은 流 産하고 있었으며 ⺠人들의 동요를 안정시키고 飢⺠을 구제하는 것이 급선무가되던 시대였다. 선승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실천적 수행에 임하고 있었다. 鳳林山門은 玄昱의 心印을 받은 審希의 장기간에 걸친 巡歷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으며, 제자들이 入唐 수학 후 귀국해 국내 활동을 이어가면서 신라 왕실의 귀의와 고려 태조의 후원으로 분화 발전하였다. 여기서는 비문을 남기고있는 忠湛, 璨幽, 洪俊 등을 중심으로 그들의 사회적 활동 통해 이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봉림산문은 중심 선승인 심희의 경주 방문으로부터 스승의 입적과 그의 삶을 기리는 입비 과정에서 분화를 본격화하였다. 이는 분국기에 고려의 적극적인 선승 포섭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았으나, 내부적으로는 심희의 당대 불교에대한 진단과 群生 구원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 표명과 활동의 영향으로도 이해된다. 이로써 산문은 鳳林寺 외에 高達院, 興法禪院, 境淸禪院 등으로 각기 독립된 문파를 이루어 갔다. 봉림산문의 분화는 禪僧 심희의 廣揚佛道 정신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문하 제자들이 고려 태조에 협력하여 통일 과정에도 기여하게 한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이러한 활동은 중심 승려의 개방적이면서 실천 지향한선사상과도 그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The era from late Silla to Early Goryeo Dynasty was a period requiring enormous transition to a new society in which armed conflicts occurred in every corners of the politically-divided states and men of local influence tried to gain political power. It was also a time when a con sequen tial priority should be given to stabilize the local refugees and relieve the starved people. In these circumstances Zen monks were committed to practical asceticism. Bonglim-sanmun was founded by Simhui, a Buddhist disciple of Monk Hyeonuk, in the long course of pilgrimage. It was divided and developed by his followers who studied in Tang Dynasty and returned to their homeland with the royal devotion of Silla and strong support of King Taejo of Goryeo. This thesis aims to understand the process focusing on the epitaphs of the monks Chungdam, Chanyu and Hongjun as well as their social activities. The religious division of Bonglim-sanmun began in earnest during the funeral in memory of his life and death after Simhui’s visit to Gyeongju. This trend, not irrelevant to the policy to actively embrace Buddhism in Goryeo era, is understood as Simhui’s diagnosis on the religion at the time the influence of positive will to redeem all the lives in the world. The campaign led to the formation of independent Buddhist sects such as Godalwon, Heungbeop Zen Institution and Gyeongcheong Institution, besides Bonglim Temple. The religious segment of Bonglim-sanmun is understood as the priest’s Zen spirit to widen Buddhist teachings to the fullest. It also explains his disciples’ cooperation with King Taejo’s efforts for national unification. Such activities are seen to have much in common with the open and practice-oriented Zen ideology of the key priests.

Ⅰ. 머리말

Ⅱ. 나말려초 禪僧들의 동향

Ⅲ. 鳳林山門의 형성과 전개

Ⅳ. 鳳林山門의 분화와 성격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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