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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고연구 제43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광양 동천하류역 3~6세기대 취락의 형성과 전개과정 연구

본 글은 전남동부지역으로 지역권이 설정되는 광양지역 가운데 동천하류역의 3~6세기대 취락 형성과 전개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이 지역은 최근까지 지속적인 발굴조사 성과로 고고자료의 추가 확보가 이루어지고 있어 기존 연구와 더불어 새로운 자료를 활용한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광양 동천하류역 일대에서 조사된 3~6세기대 유적은 모두 7개소 10지점 정도이다. 유적별 성격을 분류하면 주거, 고분, 관방, 생산유구로 대별된다. 또한 이 지역은 다수의 외래계 유물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이 지역이 가지는 자연·지리적 환경과 점이지대의 성격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상기 내용들을 검토하였고, Ⅰ~Ⅲ기로 단계를 설정하여 광양 동천하류역 취락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Ⅰ기인 3세기대가 되면 토착집단은 평지로 주거구역을 확대하면서 활동하였고, 4세기 중엽이 되면 타 지역의 주거문화와 유물이 본격적으로 이입되어 점이지대의 성격을 띤다. 지리적으로 마한과 가야의 변방에 위치하고 있어 발전이 늦었던 이 지역 집단은 이를 극복하고자 대외교역의 기착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성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Ⅱ기인 5세기 전엽 이후 소가야계 유물은 타 정치체보다 압도적인 수량을 자랑하고 주거형태도 방형계로 바뀐다. 그리고 이 시기 마한계와 왜계 유물의 반입을 통해 백제-마한-가야-왜로 이어지는 해양 교통로에서 가교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동천하류역 집단은 종전의 경제적 관계에서 벗어나 소가야와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자체적인 물품 생산과 5세기 후엽~6세기 전엽 재지 수장묘인 분구묘를 조성함으로써 토착집단의 정치적 신장을 짐작할 수 있다. 전남동부지역은 임나사현으로 비정되고, 광양 동천하류역이 모루의 중심취락으로 지목할 수 있다. Ⅲ기인 6세기 전엽 이후 백제 고분군과 마로산성이 조성됨으로써 동천하류역의 토착집단은 백제의 직접지배 체제에 편입되지만 여전히 이 지역이 치소로 기능함에 따라 광양지역의 중심취락으로 자리하였다.

This article is a study on the process of settlements formation and development during the 3rd ~ 6th centuries in the down Dong-cheon area among the Gwangyang area, which is a regional area in the eastern part of Jeonnam.This region has been continuously yielding archaeological findings through recent ongoing excavations, necessitating further research utilizing both existing and newly acquired data. The historic sites over the down stream of Dong-cheon, Gwangyang region have been studied are 7 points and 10 locations. This place can be classified broadly into their features such as dwelling, mound, fortress, and production. This area is also where many foreign artifacts are concentrated. This is understood as the nature of the natural and geographic environment and the transitional zone of this area. Therefore, the above contents were reviewed, and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process of the Dong-cheon Stream downstream region in Gwangyang was examined by dividing them into Ⅰ~Ⅲ. In the 1nd period, natives broaden their residence to flatland in the 3rd centries and their housing culture and relics started to flow in and features as the transitional zone in the Mid-4th centries. It seemed that having grown while serving as a stopover for foreign relations, that to overcome the geographical limitation causing slow development, which located in boarder area of Mahan(馬韓) and Gaya(加耶). In the 2nd period, after early 5th cenries, the amount of Sogaya(小加耶) type relics have been appeared to overwhelmed to other political systems. Also their form of habitations had changed into a squre shape. Through the importing Mahan or Wae type relics, it can be seen as means of bridge in marine route connecting Baekje(百濟)-Mahan(馬韓)-Gaya(加耶)-Wae(倭) during this term. The down stream group of Dong-cheon, formed relationship between Sogaya(小加耶) more closely. It can be estimated by producing their own products and constructing mounded tomb of regional head’s tomb from fhe late 5th centries to early 6th centries, that indigenous forces had been increased. The eastern part of Jeonnam was designated as Imnasahyun(任那四縣), and it is certain that down stream of Dong-cheon were central settlement in Moru(牟婁). In the 3nd period, passing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with the construction of Baekje(百濟) tombs and Maro Mountain Fortress, the downstream of Dong-cheon was included in the direct ruling system of Baekje's local administration, and it still remained as the central settlement of the Gwangyang region.

Ⅰ. 머리말

Ⅱ. 동천하류역 취락의 공간성과 대상유적 검토

Ⅲ. 동천하류역 출토 외래계 유물

Ⅳ. 동천하류역 취락의 형성과 전개과정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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