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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고사학보 제123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영남지방 초기 국의 등장 배경과 사로국 구조

서기전 2세기대에 영남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된 원거리 교역망과 거점 취락의 의례 구축물 들을 통해 초기 국의 성립 배경과 결속 방식을 살펴보았다. 영남권역을 넘어선 원거리 교역은 서기 전 2세기대부터 집중되고, 대외 교역이 활성화된 거점도 목관묘 군집화 현상이 이른 시기에 발견 되는 지역들(주로 대구, 경산, 경주지역)과 대세적으로 중첩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서기전 2세기대에 집약적으로 전개된 대외 교역 속에서 물류 유통·재분배와 소요 비용 절감, 정보 연대에 적합한 형 태로 사회경제적 연합체를 꾸리고자 지역 단위를 내부 결속한 국이 등장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런 초기 국들이 광역적으로 활성화된 대외 교역과 철기 생산, 유통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 정치 체로 존속됨에 따라 취락, 읍락 인근에 이른 시점부터 목관묘 군집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추론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로국에 초점을 맞추어 지형 조건, 교통로와 문헌 기록, 그리고 고고 자료를 연계함으로써, 통시적으로 변화한 읍락 구성과 국의 구조를 설명하였다. 서기전 2세기 중엽 즈음 에는 초기 사로국이 성립되었을 것으로 예상되고, 주요 읍락으로 상징되는 6촌이 회의체를 통해 결속되었다고 풀이된다. 초기 사로국은 읍락별로 여러 형태를 보이면서도, 지역 공동체를 결속, 유지 하는 장치로서 거점별로 제단식 지석묘, 고지성 환호, 입목-의례 구조물, 초기 목관묘군 등을 구축한 현상은 유사하다. 또 초기 문헌 기록에서 언급되는 거서간, 차차웅이라는 칭호 또한 이념적, 종교적 권력기반에무게를두고있었다. 이렇듯취락거점의의례구조물, 초기지배자의권력기반으로볼 때, 국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외 교역의 이익 추구만으로는 지탱하기 어려웠고, 전통적으로 중시되어 온 거석 기념물, 고지성 환호 등을 변형해서라도 공동체 결집을 이끌어냈다고 상정된다. 서기전 1세기에 접어들면, 영남 전역에서 목관묘 군집화가 대세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인근에 존 재한 취락의 장기 지속성을 상정하여 대다수 국이 출현했던 것으로 보았다. 사로국에서도 지배자 의 칭호는 존장자를 뜻하는 이사금으로 바뀌고 여러 국들이 연대하여 진·변한 연맹체를 조직하 였으며, 낙랑을 매개로 한 對중국 교역을 통해 경제적 재부를 축적하고 정치 조직의 결속을 도모 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Through the long-distance trade network and ritual structures of base settlements that were intensively developed in the Yeongnam region in the 2nd century BC, the background of the establishment of the early politics and the method of solidarity were examined. Long-distance trade beyond the Yeongnam region is concentrated in the 2nd century BC, and the bases where foreign trade is active overlap with regions(mainly Daegu, Gyeongsan, and Gyeongju) found in the early days of the clustering of wooden tombs. In some regions, politics that internally united regional units appeared in order to form a socio- economic coalition suitable for logistics distribution, redistribution, cost reduction, and information solidarity amid intensively developed foreign trade in the 2nd century BC. Thus, it is inferred that the clustering of wooden tombs appeared from the time when these early politics reached villages and townships as local political bodies to maintain active foreign trade, iron production, and distribution. In this situation, by linking topographic conditions, traffic routes and literature records, and archaeological data, focusing on Saro-guk, the composition of the euprak and the structure of the country were explained. Around the middle of the 2nd century BC, it is expected that the early Saroguk was established, and it is interpreted that the 6 villages, symbolized as major towns and villages, were united through the conference. Early Saroguk is a device that binds and maintains local communities while showing various forms for each town and village, and the phenomenon of establishing altar-style stone tombs, high- altitude enclosure, standing-ritual structures, and early wooden tombs by base is similar. In addition, the title of ChaChawoong, which was mentioned in early literature records, also weighed on the ideological and religious power base. Given the ritual structure of the settlement base and the power base of the early ruler, it was difficult to sustain the national structure only by pursuing the interests of foreign trade, and it is assumed that even by transforming the traditionally important megalithic monuments and high-altitude enclosure, it led to community cohesion.

Ⅰ. 머리말

Ⅱ. 영남지방 초기 국의 등장 배경

Ⅲ. 사로국의 성립과 내부 구조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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