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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日本中世における「土民」たちの主体性について

徳政一揆と記憶の関わりから

1428년 교토 근교에 거주하는 자들, 즉 사료상에 ‘토민(土民)’들로 표현된 자들이 소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무로마치 막부와 금융업자들에게 덕정(徳政)을 요구하며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 ‘덕정’이라는 용어는 14세기부터 현재까지 일본 사회에서 금융업자들이 그들의 채권을 무상으로 포기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본 논고는 토민들이 행사한 폭력의 배경을 해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토민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러한 의도는 토민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막부와 조정 등 역대 권력체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축적된 기억에 근거한 것이었다. 따라서 1428년 토민들이 어떠한 경험을 했으며, 그 결과 그들이 갖게 된 기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본 논고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주지하듯이 일본에서 덕정이라는 정치 형태는 고대, 특히 8세기부터 확인된다. 하지만 8세기에 보이는 덕정은 명칭은 같지만, 15세기에 토민들이 요구한 그것과 다르다. 8세기 나라 시대에 실시된 덕정은 곤경에 처한 백성들을 구제하거나 범죄자들을 풀어주고, 덕정이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면제해 주는 행위를 가리켰다. 그런데 이러한 덕정은 어느 시점부터 의미가 변질되었다. 본 논고에 입각해서 볼 때 고대의 덕정과 중세 덕정은 연속된 하나의 행동 양식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필자는 덕정이 현재와 과거의 양극 사이에서 요동치는 일종의 시간 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이상적인 과거로 시간을 되돌려 사회 전체를 새롭게 하는 정책을 의미했지만, 그 기능은 계약 순간에만 작동하는 등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덕정은 고안(弘安) 시대에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몽고의 2차 공격 직후 가마쿠라 막부가 실시한 고안 덕정, 즉 일반인들에게 명령하여 신사에 재산을 돌려주게 한 이 정책은, 덕정이 무상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정책이라는 인식을 형성하였다. 1428년 토민들과 그들의 조상들은 고대 일본 조정에서 실시한 덕정의 수혜자들이었다. 그리고 몽고가 공격한 직후 자신 또는 타인이 재산을 잃는 과정을 목격한 자들이기도 하였다. 본 논고에서는 당시 토민들이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 기억에 의존하여 무로마치 막부에 덕정을 요구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In 1428, residents of suburban of Kyoto who were described “Domin” (土民), meaning ordinary people or locals, in one primary source caused an upheaval. They took violence actions requiring the administration and money lenders for implementing Tokusei (徳政). This term has indicated regulations which make lenders abandon claims for free from the 14th century to now in Japanese societ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crystalizing the undercurrent of their violence. In short, I anticipate they used their own forces according to the firm intention. Additionally, I suppose this intention might root on the memory they could have throughout experiences they and their ancestors had gain relating with administrations. I attempt to make clear what experiences they had had and what memory they were able to have in 1428 as its result. Famously the policy named Tokusei had been implemented in ancient era, especially from the8th century. On the other hand, what had been done at that era was different from what Domin required in the 15th century despite of having the same name. The ancient administration had relieved those who were in trouble, released criminals, declined taxes under this name. Somewhen meaning of this term had changed obviously. This paper demonstrates we can grasp ancient Tokusei and medieval one as one consecutive behavior if we adopt the viewpoint time. I suppose Tokusei was a sort of chrono-policy which made time oscillate between two poles, present and past. Though that meant the policy which renewed entire society by empowering time back to the ideal past primarily, its function was delimited working at the moment of contract alone. The turning point was the Koan (弘安) era. The Kamakura shogunate implemented the reform named Koan Tokusei soon after the secondary Mongolian attack. This policy which ordered ordinary people to return their properties to shrines structed the recognition that Tokusei was the name of policy which cancellate contracts for free. Domin in 1428 and their ancestors had received some benefits from Tokusei since ancient era. Additionally, they had witnessed someone else lost properties or lost their own properties soon after the Mongolian attacks. This paper concludes they took action relying on the memory which had consisted of these experiences.

Ⅰ. はじめに

Ⅱ. 徳政一揆と徳政をめぐる議論の展開

Ⅲ. 時間という視角―古代と中世をつなぐもの

Ⅳ. 徳政観の変容の画期

Ⅴ. もう1つの記憶

Ⅵ. おわり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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