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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학보 第128號.jpg
KCI등재 학술저널

조선 역관 김지남의 『북정록』과 백두산정계

1712년 조선 역관 김지남(⾦指南)이 청나라 오라총관 목극등(穆克登)을 수행하여 조청 국경을조사하였으며, 그 과정을 기록한 일기 『북정록』을 남겼다. 이는 백두산정계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김지남은 연로한 관계로 백두산 천지에 오르지 못하였고 수원을 조사하고 비석을 세워 정계하는과정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그의 일기에는 목극등을 동행하였던 조선의 차사원ㆍ군관 등의 치보(馳報)ㆍ보장(報狀)을 기록하였다. 이 부분 내용이 모호하고 또 지명 정보가 간략하게 나타난 관계로, 단지 『북정록』을 통하여 목극등이 정한 두만강 수원과 경계를 나누는 하천을 판단하는데는 일정한 한계가 따랐다. 그러므로 기타 문헌자료 특히 양측 지도자료를 참고로 해야 진실을 알 수 있으며, 목극등이 정한 ‘대홍단수상류’가 실은 오늘날 홍단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북쪽에 있는 홍토수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In the 51st year of the Kangxi reign (1712), the Korean translator Kim Jinam followed Mukden (Chinese: Mukedeng), the chief officer of Wula (today’s Jilin Province) of the Qing Dynasty, to investigate the boundary between the Qing Dynasty and Korea, and left a diary “Northern Expedition Record” that recorded the whole process, which is an important material for studying the boundary definition of Mukden. Due to his old age, Kim Jinam himself could not climb Changbai Mountain to personally experience the process of checking the river source and erecting a monument to delimit boundary, but he recorded the content of the quick report and official press of the Korean witnesses. Due to this record is not his personal experience, the content is inevitably vague, and the place name information is simple, so there are certain limitations to judge the source of Tumen River and the demarcated river determined by Mukden only referring to the “Northern Expedition Record”. And it is necessary to refer to other literature, especially the map data of both sides, to understand the whole picture and distinguish that the “upstream of Dahongdan River” determined by Mukden actually means to the Hongtu River, but not the Hongdan River today.

Ⅰ. 머리말

Ⅱ. 역관 김지남과 『북정록』

Ⅲ. 차사관ㆍ군관의 치보(馳報) 내용에 대한 분석

Ⅳ. 목극등과 박권 사이 두만강 수원을 둘러싼 논쟁

Ⅴ. 중국측이 지도를 제작하는 의도를 숨긴 이유

Ⅵ.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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