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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斯盧國의 鐵 생산과 해상 교역 운영

Iron Production and Operation of Maritime Trade of Saroguk

물품의 교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생산지, 집산지, 소비지의 존재가 설정되 어야 한다. 辰韓에서 생산되었던 鐵은 狗邪國으로 집산되어 郡縣과 韓・濊・倭로 유 통되었다. 철이 집산되는 곳은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이 곳에서는 철을 매개로 교환 활동이 이루어졌다. 생산지와 소비지에 해당하는 나라들은 교역 중심지에 이르기 까지 해상 또는 육상의 교통로를 이용하며 교역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배 경 속에서 斯盧國은 주변의 소국들에 대한 진출을 토대로 교통망을 장악하였고 나 아가 국가적 성장을 모색하고 있었다. 본고에서는 전쟁과 복속을 통해 광역의 유통망을 통합하고, 그것을 정비하며 성장하고 있었던 사로국에 주목하여 三國志에 전하는 ‘國出鐵’ 기사의 실상을 살피고자 하였다. 弁辰에 무게를 두고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특히 太平御覽 珍寶 部 鐵에 인용된 魏略에 보이는 ‘弁辰國出鐵’ 기사를 중요한 근거로 활용하였다. 다만 太平御覽에서는 사료를 인용함에 있어서 종종 오류가 발견되므로 太平御覽이 실제로 魏略의 문장을 인용한 것인지 분해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弁辰 國出鐵’ 이하의 내용은 太平御覽의 찬자가 三國志를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이 루어진 오해라는 가설을 제시해보았다. ‘國出鐵’ 기사를 재검토함에 따라 철을 중심으로 했던 국제적 교역이 비단 변 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진한과 관련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사로국은 주변의 철산지와 해상거점의 국들을 복속해나갔고 철의 생산과 유통뿐 아니라 교역 전반 을 관리하며 진한의 구심체로 부상하였다. 三國志 東夷傳 弁辰條에 전하는 ‘國 出鐵’ 기사는 진한에서 생산된 철이 변한의 국에서 집산・교환되었던 복합적인 상 황을 반영하고 있었다.

What must be established in exchanges between groups are the production source, gathering site, and consumption area. This text focuses on the iron trade by the Chinhan (辰韓) and Byeonhan (弁韓), and the production and gathering sites of iron, as well as the distribution process through which iron was exported to consumption areas, will also be examined. Countries corresponding to production and consumption areas have established trade networks by utilizing maritime or inland routes to reach ports of trade. Saroguk (斯盧國), based on its expansion into neighboring small countries, had seized control of transportation networks and was seeking ancient national growth. In this text, attention is given to the Saroguk (斯盧國) that grew by integrating a broad network through wars. We will examine the article ‘Iron comes from guk (國出鐵)’ from the Records of the Sanguozhi (三國志). Particularly, There is a perspective interpreting this article as referring to Byeonhan (弁韓). The article from the Weilue (魏略) cited in the Taipingera (太平御覽), which states ‘Iron comes from ByeonChinguk (弁辰國出鐵)’ has been utilized as important evidence to support this interpretation. However, as errors have been occasionally found in the citations from the Taipingera (太平御覽), it needs to be re-examined. Ultimately, I suggest the hypothesis that it might have been an error. It was confirmed that international trade centered around iron was not limited to Byeonhan (弁韓) but was also related to Chinhan (辰韓). Saroguk (斯盧國) subjugated neighboring iron-producing areas and maritime trading ports, managing not only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iron but also all trade, rising as the core of Chinhan (辰韓). This article reflects the complex situation where iron produced in Chinhan (辰韓) was gathered and exchanged in the guk (國) of Byeonhan (弁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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