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에 월지와 월성해자 사이 도로에서 발견된 「首力知銘 각석」은 각자 시 점, 명문 해석에 논란이 있다. 「首力知銘 각석」은 전・후면이 연속적인 하나의 명 문이 아니라, 전면의 비석이 파손된 후 이를 재활용하여 후면에 다른 내용을 각석 한 비임을 확인하였다. 각석의 인명과 관등명의 분석을 통해 전면은 6세기 중후반 에 각석된 것으로 왕경인의 徒가 왕경 도시시설을 축조한 공역조직에 대한 비문이 었음을 밝혔다. 후면은 6세기 말에 及伐車라는 외위를 가진 지방민이 왕경 도시시 설 조영사업에 참여한 내용을 각석하였다고 보았다. 특히 비형랑・길달 설화와 「首力知銘 각석」 명문을 통해, 6세기 왕경 도시시설 의 건설은 敎令으로 발의되었고 敎令의 집행을 위해 有司가 조직되었음을 밝혔다. 有司는 公服制상으로 ‘靑衣-黃衣’계열로 구성되므로 비형랑・길달도 靑衣계열의 관 등을 가졌을 것이고 首力知도 비형랑・길달과 같이 왕경 도시시설 조영을 위한 공 역조직의 長이었으므로 靑衣 계열이었음을 논증하였다. 아울러서 비형랑・길달과 首力知奈末의 하부 공역조직은 黃衣계열(大舍 이하)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남산 신성비」 제3비의 하부 공역조직도 喙部監典 내에서 3등관의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In 1976, the 「Suryeokzi inscription stones(首力知銘 刻石)」 found on the road between Wolji(月池) and Wolsung Moat(月城 垓子). It was recycled after the front epigraph was destroyed, and a different project was inscribed on the back. The front of epigraph was inscribed in the mid-to-late 6th century and was an inscription about the construction organization that built Wanggyeong(王京) urban facilities by Do(徒). The back was considered that with an external official rank of Geupbeolcha(及伐車) participated in the Wanggyeong Construction Project at the end of the 6th century. In Bihyungrang(鼻荊郞) and Gildal(吉達) tales, we can see the operation way of urban facility construction projects in Wanggyeong. the construction of Wanggyeong was proposed as a Kyo(敎)-Ryeong(令). The temporary organization(有司) was organized for the execution of Kyo-Ryeong. Suryeokzi, Bihyungrang and Gildal were all the heads of the organization for the construction of Wanggyeong, so they had an dofficial rank of Namal(奈末) of Blue Clothes. And sub-construction organization in Namsansinseong- bi(南 山新城碑) of 3rd epigraph is in the position of 3rd rank within the Takbu Gamjeon(喙部監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