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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경제범패 전승과 의례 현실 -동주 스님 구술을 통하여-

A Study on the succession and the background of the Gyeongje Beompae in the Korean Buddhist chant tradition -Through Ven Dongju’s oral content-

본고는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25』에 실린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3호 경제어산 보유자 동주원명 스님의 구술 내용 을 관련 사료에 비추어 재 고찰함으로써 본 구술집의 사료적 신뢰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구술 과정에 얻게 된 새로운 사실과 그에 대한 학술적 의미를 조명하였다. 1945년 충남 온양에서 태어난 동주 스님은 1961년 김태흡(대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벽응 스님으로부터 홑소리를 배운 후 1967년부터 송암 스님을 시봉하며 영산 과정을 마쳤다. 이때 송암 스님의 범패를 녹음한 음원이 『송암 스님 유작집』 의 핵심 내용으로 수록되었다. 부친이 스님이었으므로 어려서부 터 염불과 범패를 자연히 접할 수 있었던 데다 선율 암기와 의례 설행에 대한 이해가 높아 송암 스님의 기대가 컸다. 1970년 9월 선방으로 수행을 떠나 13안거의 선(禪)수행을 마치고 1977년 삭발 본사인 상도동 사자암의 주지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의례 전승원 강좌를 개설하여 제반 의식과 범패 전수 교육을 해오다 1993년 홍원사롤 창건하여 경제 범패 전승과 더불어 제자 양성의 길을 확대했다. 2006년에 조계종 어장을 비롯하여 조계종 행자교육원, 승가대학 등지에서 의식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영산재 이수자로서 2013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만공 스님의 조카 상좌였던 부친, 권상로ㆍ안진호와 더불어 3대 강사로 명성이 높았던 김태흡 스님과 경제 범패를 대표하는 송암 스님을 모시면서 어른들로부터 듣거나 목격한 일들을 구술하는 데는 동주 스님의 비상한 기억력의 힘이 컸다. 1969년 옥천범음대학의 제 1기 범패 강습회, 경제 동교와 서교 스님들을 직접 만나며 들었던 전승 실태, 해방 전후 함흥ㆍ개성ㆍ금강산을 오가며 범패를 가르친 전우운 스님, 진관사의 응탄 스님이 개성 화장사에서 범패 강의를 한 내용은 경제 범패가 개성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기도 했음을 일깨웠다. 억불과 전쟁을 지나며 생계가 어려웠던 승려들의 탁발 염불과 관악산 도자메기 소리는 의례와 범패가 사찰 운영ㆍ 승려들의 생계 유지와 불교 홍법을 위한 실용음악으로서의 기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한 국악과 재장을 오가는 승려 들의 활동은 불교음악과 한국전통음악이 한 뿌리임을 역설하였다. 다년간의 선방 수행을 한 동주 스님은 범패를 잘 하기 위해서 일념의 집중, 의례문에 대한 송문관의(誦文觀義), 법력을 통한 의례 목적의 실현을 강조하였다. 어장의 이러한 일성(一聲)은 앞으로 범패를 전승해갈 스님 뿐 아니라 이 방면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In this research, I focused on the life and succession of the Gyeongje Beompae through the oral dictation of Ven Dongju, Seoul'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43, while at the same time focusing on new related facts and previously misunderstood information. Ven Dongju was born in Onyang, South Chungcheong Province in 1945, and became a monk in 1961, He learned Beompae from instructor Ven Byeogeung, and completed all Yeongsan courses while attending Ven Songam at Bongwonsa Temple in Seoul, in 1967. At this time, a sound recording of Ven Songam's Beompae was included as key content in 『The Posthumous Works of Grand Master Ven Songam in the Korean Buddhist Chant Series 』. Because his father was a monk, he had been familiar with chanting and Beompae while growing up, and had a profound grasp of memorizing Beompae melodies and performing its rituals. Thus his instructor, Songam, had high expectations for him. In 1970, Ven Dongju left to practice Zen meditation and returned to Sajaam temple, Sangdo-dong, Seoul in 1977. Afterwards, he opened a course at the Institute for Ritual and Chanting and taught Beompae to various disciples. In 1993, he founded Hongwon Temple and has trained many disciples there to this day. He dictated what he heard or experienced while attending Beompae master Ven Songam’s classes, in addition to tose of Ven Kim Taeheup, who was a famous scholar and lecturer on Buddhism. Ven Dongju told me about the first Beompae lecture at Okcheon Beomeum Institute in 1969, especially the Beompae transmission circumstances of the western and eastern regions in Seoul at this time. He mentioned the activities of Ven Jeon Uun, who taught Beompae in Hamheung, Gaeseong, and all around Korea before and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occupation, He also talked of monk Eungtan from Jingwansa temple who lectured in Hwajangsa Temple in Gaeseong. These facts tell us that Gyeongje Beompae was not only influenced by Gaeseong Beompae, but also, in turn, influenced it. Above all, the fact that monks were active in the field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Buddhist ritual music and had exchanges with traditional Korean musicians was an opportunity to confirm the important basis that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Beompae are tied by one r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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