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한국고대사탐구학회.jpg
KCI등재 학술저널

신라 헌안왕의 가지산사 운영과 그 성격

Operation and its Characteristics of Gajisansa Temple of King Hunan in Silla Dynasty

DOI : 10.35160/sjekh.2023.4.43.107.

이 논문은 신라 하대 선종 9산문 가운데 하나인 가지산문의 성립과정에서 헌안왕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살펴본 글이다. 가지산문은 신라에 선종을 처음 전한 도의와 그 제자 염거를 계승한 체징에 의해 개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의 연구도 체징이 신라 왕실을 포함한 중앙 귀족의 후원을 받아서 가지산문을 개창한 사정을 밝히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 그러나 현재 보림사에 전하는 「新羅國武州迦智山寶林寺謚普照禪師靈塔碑銘」 및 「寶林寺鐵造毘盧遮那佛坐像造像記」처럼 당시의 사정을 알려주는 자료들을 살펴보면, 가지산문의 중심 도량인 가지산사는 처음 세워진 중대부터 이미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체징의 가지산문 개창 과정에서도 사실상 헌안왕이 가지산사의 중창을 주도하였다. 심지어 체징이 가지산사로 옮겨온 것도 헌안왕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헌안왕의 가지산사 중창은 장보고의 난을 겪으면서 신라 왕실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무주 지역을 위무하려는 것이었다. 헌안왕이 이때 체징을 불러들인 것도 그동안 김헌창의 난으로 인해 신라 왕실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웅주인들의 교화에 힘써왔던 그의 도움을 받아 무주인들을 교화하려는 것이었다. 이처럼 헌안왕이 가지산사를 중창하고 체징에게 그 운영을 맡겼던 것은 신라 왕실과 무주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무주 지역은 장보고의 난을 계기로 서남해의 해상세력과 내륙의 토호세력 사이에 갈등이 크게 생겨났고, 이들은 각각의 이해관계로 인해 각자의 내부적인 갈등까지 겪고 있었다. 여기에다 중앙의 정치세력들도 이 지역에 대한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서로 충돌하였다. 헌안왕은 이러한 무주 지역을 둘러싼 전반적인 문제들을 해소할 목적으로 가지산사를 중창했던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role of King Hunan in founding Gajisanmoon School, one of the nine Zen Buddhism schools in the late Silla Dynasty. It is generally known that Gajisanmoon School was founded by Doui who first introduced Zen Buddhism to the Silla Dynasty, and Chejing who succeeded Yeomgu, who was Doui’s disciple. As such, previous studies focused on clarifying how Chejing found Gajisanmoon school under the auspices of the royal family and central aristocrats. According to the records, such as the Stele of Zen Master Bojo and the inscription of Iron Vairocana Buddha Statue currently kept in Borimsa temple, that show the situation of that time, Gajisansa, the core temple, already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royal family in the middle of the Silla Dynasty when it was first founded. In Chejing’s founding of Gajisanmoon School, King Hunan actually led the rebuilding of Gajisansa temple. Even Chejing’s move to Gajisansa temple was at the request of King Hunan. King Hunan’s rebuilding of Gajisansa temple stemmed from his intention to appease the people of Muju, who became dissatisfied with the royal family of Silla Dynasty because of Chang Bogo’s rebellion(841). In those days, Chejing, who worked hard to edify the people of Woong-ju who were hostile to the royal family of Silla due to Kim hun-chang’s rebellion(822), moved to Hwanghaknanya in Muju. The reason King Hunan brought Chejing to Gajisansa temple was to edify the people of Muju through Chejing. King Hunan rebuilt Gajisansa temple and entrusted its management to Chejing because he desperately needed to improve the relations with the people of Muju. In Muju, a great conflict arose between the maritime forces of the Southwest Coast and the indigenous forces of the inland in the aftermath of Chang Bogo’s rebellion. What is worse, both the maritime forces and the indigenous forces were experiencing internal conflicts due to their own interests. Furthermore, conflicts occurred because of the mutual interests in Muju between central political forces. For this reason, King Hunan needed to resolve these issues on Muju.

Ⅰ. 머리말

Ⅱ. 가지산사의 중창과 그 주체

Ⅲ. 헌안왕과 체징

Ⅳ. 가지산사의 중창과 무주

Ⅴ. 맺음말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