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475년 고구려에 의해 한성이 함락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한강유역을 활용하고 있었음은 『삼국사기』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고구려군의 회군과 이후 한 동안 백제를 공격하지 않은 고구려로 인해 웅진시기 백제왕들은 한성을 재건할 수 있었다. 웅진으로 천도하였음에도 백제왕들은 한강유역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백제의 웅진천도는 한성을 재건하고 한강유역을 회복하기 위해 임시 머무르는 곳으로 인식하고, 한강유역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 고토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웅진시기 백제가 한강유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사민과 축성, 역역에 동원된 민들의 활용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민의 대상이 한성인들이라는 것은 여전히 한성지역 민들을 백제의 민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축성과 관련된 역역동원에서는 한강 이북의 동부와 북부 민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백제가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성의 지역 뿐 아니라 동원된 민들을 보면 웅진으로 천도하였음에도 한성지역은 백제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웅진시기 한성인과 한강유역을 백제지역으로 인식하고, 함락된 한성과 한강유역을 회복하고자 했던 이유는 한강유역의 가치 때문이었다. 한강유역은 견사 조공로였고, 수취기반으로서의 경기만 일대와 경기 남부지역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한성의 함락으로 동성왕대부터는 화성의 경기만을 활용하여 교섭하고, 한강에서 이어지는 경기남부지역 주로 오산, 용인, 화성 지역은 제철산지 및 풍부한 농업 생산력 그리고 저장수혈이 집중되어 있는 생산 및 유통의 중심지로 한성의 주요 수취체계원이었던 이곳을 웅진시기 백제왕들은 반드시 재건해야 했다. 백제의 한강유역 및 한성의 재건을 드러낸 것은 동성왕 11년 10월의 천지 제사이다. 백제는 웅진천도와 함께 종묘사직단을 새로 설치하여 제사를 이어갔다. 웅진시기에는 동성왕 11년 10월 제사만 기록되어 있다. 동성왕 10월 제사는 천도 후에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단을 설치하여 천지신께 감사와 풍년 기원의 제사를 지내며 신하들과의 연회를 통해 웅진시기 왕실의 권위 회복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Records of Samguksagi show that Baekje made use of the Han River basin even after its Hanseong fell to the enemy of Goguryeo in 475. They moved their capital to Woongjin, but kings of Baekje would not give up the Han River basin. It was because they regarded Woongjin as their temporary capital before reconstructing Hanseong and restore the Han River basin and believed that the Han River basin was their native land that must be restored. One can guess how Baekje perceived the Han River basin during the Woongjin period based on the uses of people mobilized in Samin and Yeokyeok. All of them were local residents of Hanseong. The Han River basin held many values for Baekje. It offered a tribute route to China and contained major acquisition system sources including iron manufacture areas and storage pit groups in southern parts of Gyeonggi. Baekje must restore the Han River basin during the Woongjin period. It was at a memorial service for the Heaven and Earth in October in the 11th year of King Dongseong's reign when Baekje displayed its determination to restore the Han River basin and reconstruct Hanseong. Moving its capital to Woongjin, Baekje installed a new Jongmyo Sajik platform to hold memorial services. The October memorial service in the 11th year of King Dongseong's reign was intended to show that Baekje achieved political stability after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hey tried to demonstrate that the royal family of Baekje restored their authority during the Woongjin period by building a new platform, holding a memorial service to thank the Heaven and Earth gods and pray for a good harvest, and give a banquet with the subjects.
Ⅰ. 머리말
Ⅱ. 백제 웅진시기 한강유역 군사적 회복 활동
Ⅲ. 백제 웅진시기 축성과 사민정책
Ⅳ. 백제의 종묘사직과 웅진시기 천지제사 의미
Ⅴ.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