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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7세기 고구려 도교의 실상과 배경

The Reality and Its Background of Taoism in Goguryeo in the 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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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류왕 시기 도교라는 새로운 사조의 유입이 이루어진 것은 당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도교 수용은 외교적 방침으로 행해졌으므로,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보장왕 시기 연개소문의 도교 진흥 또한 당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조치였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무렵부터는 도교가 비중 있는 역할을 하였다. 도사들은 방술과 비결을 통하여 국가 공동체의 존속과 무사태평을 빌었다. 이는 고구려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는데, 동요하던 사회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일정한 도움을 주었다.

In the period of King Yeongnyu’s reign, Goguryeo embraced Taoism, which was a new trend, in order to maintain amicable relations with Tang dynasty. The adoption of Taoism at this time was carried out as a diplomatic policy. As a result, Taoism could hardly take root in the society. In the period of King Bojang’s reign, Yeon Gaesomun promoted Taoism, keeping the relationship between Goguryeo and Tang dynasty in mind. Nevertheless, Taoism played a substantial role in Goguryeo from this time on. Ascetics prayed for the survival and peace of the state-community through technical tricks and mystic prediction. This was requested by Goguryeo, and it helped to settle down the agitated social atmosphere.

Ⅰ. 머리말

Ⅱ. 영류왕 시기 도교 수용의 토대와 실제

Ⅲ. 보장왕 시기 도교 진흥의 원인과 역할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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