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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7세기 신라·왜의 대외교섭과 贈物

Diplomatic Relations and Gifts between Silla and Wa in the 7th Century

고대 일본에서는 율령제하에서 당과 마찬가지로 조용조가 기본적인 세목이다. 그런데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에는 삼국에서 보낸 증물이 거의 모두 ‘調’로표기되어 있다. 8세기 율령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고자 했던 일본 조정에게신라 측의 증물은 조세수취방식 중의 하나인 ‘調’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고대 일본의 수취체제인 ‘調’가 어떠한 이유로 외교 석상의 증물인 ‘調’로 인식되게 되는지, 그리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외교권이 확립되는 과정 속에서 ‘調’가어떠한 역할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7세기 중후반대의 상황을 나타내는 대화2년의 조서에서는 일본의 調는 섬유제품을 납부하는 기본적인 調와 향토의 소산인 調副物(鹽과 贄)로 구성되어 있다. 8세기대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양로 부역령에 의하면, 조는 絹·絁·糸·綿·布의 섬유제품을 납부하도록 되어 있고, 현물로서 조잡물과 조부물이 있었다. 대화2년의조부물은 양로 부역령의 조잡물과 성격이 겹친다. 따라서 고대 일본의 調는 섬유제품과 현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중 현물은 구래의 수장층 아래에서 공동체적인 협업을 통해 마련한 물품(調·贄)을 야마토 조정에 진상하는 ‘贄제도’의 흔적이다. 大化 이전 시대에 해산물을 주축으로 하는 식료품을 贄라는 명칭으로 천황혹은 조정에 공진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사서에서는 ‘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목간을 통해調와 贄가 몇 가지 물품을 제외하고는 품목의 내용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調에는 천황·조정의 지배에 복속한 공동체가 바치는 섬유제품과현물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외교권이 확립되는 시기에신라를 비롯한 삼국을 번국으로 설정하고, 삼국 특히 신라에서 보낸 증물을 ‘미츠키(調)’로 규정한 것은 당연한 절차였을 것이다. 대화 이전 시대부터 신라가 왜에 보내는 증물은 ‘섬유제품 중심의 調+진귀한물품인 別獻物’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고, 調가 공적인 外廷에 보내는 물건이라면, 조 이외의 다른 헌물은 야마토정권의 외교에 참여하는 大臣과 大夫에게 보내는 물건이다. 調의 다중적인 특수성 때문에 외교담당자에게 따로 제공하는 물품들이 존재하였으며, 천황의 외교권 확립을 통해 일부 대신·군경에게 제공되었던 ‘별헌물’이 천황가로 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근대 동아시아의 조공-책봉관계에서 조공국이‘별헌’한 사례는 보이지 않으며 피조공국이 조공국의 국왕뿐만 아니라 왕비·태자· 대신들에게 별도의 물품을 내렸다는 견해와 신라의 조와 별헌물이 신라의 선진의식과 자부심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견해를 참조한다면, 7세기 후반 신라와 왜는 각자 양국의 외교관계에 대해 이중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신라는“별헌물”을 통해 왜국을 ‘번국’으로 인식하였다면, 왜국은 “調”를 통해 신라를 ‘번국’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즉 7세기 후반 신라는 ‘조’와 ‘별헌물’을 왜국에 전달하면서 당의 국제질서에 반발하였다면, 왜국은 이를 통해 외교권을 군주의 권한으로 편입시킬 수 있었다.

In the Ritsuryō(律令) system of ancient Japan, the basic tax items are So(租)、Yō(庸)、Chō(調), as in the Tang(唐) dynasty. However, in the Nihon Shoki(日本書紀), all the gifts from the three Kingdoms are written as Chō(調). For the Japanese imperial court, which wants to maintain the decree system, the gift from Silla was recognized as one of the Tax collection methods. In the study, we considered why the Tax Chō(調) was recognized as a diplomatic Chō(調), and what role it played in establishing diplomatic rights centered on the emperor. In the middle of the 7th century, the Tax Chō(調) of the Taika Reform Edict is composed of textile products and local products. Even in the 8th century Yoro Code, the Tax Chō(調) is composed of textile products and the actual product. Of these, the actual item is a trace of the Nie(贄) system that promotes the goods that were cultivated through joint collaboration under the old chief to the imperial court. In the pre-Taika era, it was customary for the emperor or the imperial court to co-promote seafood called Nie(贄). However, it does not appear in official history books. However, it was confirmed through the wooden tablets(木簡) that the Tax Chō(調) and the items of the Nie(贄) overlap. In other words, the Chō(調) includes the meaning of textile products and in-kind products dedicated by the community belonging to the emperor. When the emperor's power was established, it is natural to set Silla as Bankoku(蕃国) and stipulate that the gift from Silla is the Mitsuki(調). In the pre-Taika era, Silla's gifts were divided into Chō(調) for the imperial court and Special offering(別献物) for his vassals. When the emperor's power was established, the special offering belonged to the emperor instead of his vassals. In the latter half of the 7th century, Silla regarded Japan as Bankoku(蕃国) through a special offering, and Japan regarded Silla as Bankoku(蕃国) through the Chō(調).

Ⅰ. 머리말

Ⅱ. 수취체제의 調와 贈物로서의 調

Ⅲ. 야마토 왕권의 대외관계와 調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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