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법흥왕 재위기 신라가 직면한 대내외 정세와 흥법 논의의 연관성에 대해서 살펴본 것이다. 기존에는 법흥왕의 흥법을 왕권 강화라는 정치적 측면과 신라의 전통 신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상의 필요성이라는 사상적 차원의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 기존 연구는 흥법의 결과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다양한 정치집단의 입장과 논의 과정을 주목하지 않았다. 이를 고려하여 본고에서는 왕과 신료 간 흥법 논의를 신라의 국정 방향에 대한 정치적 쟁점이 반영된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살펴보고자 했다. 법흥왕 시기에 추진된 여러 정치개혁에도 불구하고, 즉위 이후 제기된 정통성 문제, 내부 통제의 이완, 국제관계에서의 정치적 약세, 대외관계 급변 등의 문제는 신라 정국의 불안 요소로 작용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한 법흥왕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대외진출을 추진하고자 했으며, 그 일환에서 흥법을 주도하였다. 법흥왕은 흥법을 통해 외부와의 활발한 교류와 함께 대내외적 통제력과 권위를 강화하고자 했다. 반면 신료들은 신라가 직면한 대내외 정황의 급박한 사정을 이유로 체제개혁과 국방 강화에 힘을 쏟을 것을 주장하였다. 이렇듯 흥법 논쟁은 법흥왕과 신료들의 국정 방향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법흥왕의 흥법 추진은 신료들의 반대에 직면했지만, 법흥왕은 이를 강압적으로 시행하기보다는 신료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국정 성과를 도출하였다. 이는 곧 법흥왕이 흥법 문제를 둘러싸고 격화된 논쟁을 조정하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정국을 이끌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법흥왕이 주도한 흥법의 성공은 비단 왕권의 강화나 사상적 변모라는 의미 못지않게 후대 왕들과 신료들에게 신라가 지향해 나가야 하는 바에 대한 하나의 지침이 되었다. 진흥왕 이후 영토 확장과 대외교섭, 불교 활동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법흥왕이 흥법 논의를 통해 도모하고자 했던 국정 방향의 연장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This paper is aimed to look into the reign of King Beopheung when Silla faced domestic and foreign political changes and he suggested to flourish Buddhist law in Silla. Previous studies have mainly discussed King Beopheung’s decision to promote Buddhism in terms of King’s authority reinforce or ideological approach in that Silla needed a new change to substitute the traditional belief. However, in these kinds of research, the gradual decision-making process surrounding King Beopheung’s decision has been overlooked to be discussed. Considering the issue, the paper starts from the precondition that King Beophueng’s decision to flourishing of Buddhism would be associated with Silla’s political situation at that time. Firstly the paper focuses on Silla’s political situation before and immediately after King Beopheung’s enthronement. In particular, the state name and an honorific title amendment that both the King and Bureaucrat worked with show Silla’s endeavor to keep pace with a new period. However, the movement was far from the reality they sought to. Acknowledging this reality, King Beopheung tried to push ahead Silla’s expansion more outward. Contrary to the King’s intention, Bureaucrat argued to devote their energies to reinforce national defense and to finish the system reformation that continued from the period of Maripgan. The controversy related to flourishing of Buddhism stemmed from the opinion difference between them about the direction of state affairs. Despite the opposition of Bureaucrat, the king led the political atmosphere with the martyrdom of Ichadon in order to break through this situation. Next, the King made some achievements to dispel the concerns of Bureaucrat. The successful suggestion led by King Beopheung served as a good example for the future kings and Bureaucrats about what Silla should aim for, as well as the strengthening of the king’s authority or an ideological transformation in Silla. As a result, King Jinheung, the next king, could achieve territorial extension aggressively thanks to King Beopheung’s previous accomplishments.
Ⅰ. 머리말
Ⅱ. 법흥왕 대의 정국과 흥법 논의의 정치적 배경
Ⅲ. 흥법을 둘러싼 정치적 쟁점화와 해소
Ⅳ.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