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한국고대사탐구학회.jpg
KCI등재 학술저널

在唐 고구려 遺移民의 삶과 죽음

The Life and Death of the Goguryeo Emigrants in the Tang Dynasty

DOI : 10.35160/sjekh.2020.08.35.39

본고는 재당 고구려 유이민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살펴본 것이다. 재당 고구려 유이민으로 살게 된 것은 당 태종의 원정 기간 중에 투항하거나 혹은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고구려 멸망 직전 및 직후에는 주로 자발적인 귀순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모를 따라 이주한 1.5세대 유이민도 있었다. 당으로 들어간 고구려 유이민은 주로 蕃將으로 출사하였고 드물기는 하지만 文官 혹은 宦官으로 출세하였다. 그리고 유이민과 함께 들어간 어린 자녀들은 멸망한 나라에서 입당하였다는 굴레에서 쉽사리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을 필사적인 노력을 하였는데 특히 유이민 1세대와 1.5세대의 경우는 다음 세대에게 蔭職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전쟁터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재당 고구려 유이민 중 1.5세대 및 2세대의 경우 당나라 여인과 혼인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고구려 유이민의 후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살기도 하였으나 점차로 그러한 인식은 희미해졌고 점차 당나라 사람으로 동화되었다. 그 결과 재당 고구려 유이민의 후손이라는 인식은 옅어졌으며 出自까지 변개하게 되었다. 고구려 유이민 가운데 출사를 한 이들은 수도인 장안 그리고 동도인 낙양에 私第를 가지고 있었다. 사제는 황제로부터 사여받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는 노력해서 구입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유이민은 사제나 혹은 근무하던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다음 묻힌 곳도 밝혀져 있다. 유이민의 이와 같은 삶을 통해서 볼 때 비록 역사서에서 이름을 찾을 수는 없으나 묘지명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일 단면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Among the Goguryeo emigrants in the Tang dynasty, there were some prominent figures such as civil servants or eunuchs. After their death, they buried with a memorial inscription. Part of their life is well-organized on the memorial inscription. It was written by their acquaintances or the government. Thus, the contents are sometimes distorted and different from the fact. However, the inscriptions are worthy enough in that we can understand a part of the life and death of the Goguryeo emigrants in the Tang dynasty. Since the Goguryeo emigrants embraced the Tang dynasty culture, the cemetery shows how their lives were. They gradually assimilated into the Tang society, and their culture from Goguryeo was also gradually integrated into the culture of the Tang dynasty.

Ⅰ. 머리말

Ⅱ. 고구려 유이민의 당으로의 移住

Ⅲ. 재당 고구려 유이민의 出仕

Ⅳ. 재당 고구려 유이민의 婚姻과 生活 공간

Ⅴ. 재당 고구려 유이민의 죽음과 葬地

Ⅵ. 맺음말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