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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나제동맹’의 攻守 전략 검토

A Review on the Offensive and Defensive(攻守) Strategy of “Silla-Baekje Alliance”

DOI : 10.35160/sjekh.2020.04.34.49

이 글은 ‘나제동맹’의 군사 운용전략을 ‘攻守동맹’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한 것이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군사협력이 고구려를 방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용된 것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동맹’의 성격도 ‘共守동맹’ 또는 ‘방어동맹’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백제와 신라의 군사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對고구려 공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분석이 미흡하였다. 이 글에서는 사료에 기록된 백제와 신라의 공동 군사작전 내용을 분석하여 양국 군사협력의 攻守 전략의 실상을 밝혀보려 하였다. 백제와 신라의 공동 방어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양국의 군사 협력에 임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백제는 신라의 구원 요청이 없어도 원군을 파견하는 반면, 신라의 구원은 대부분 백제의 구원 요청이 있은 뒤에 이루어졌다. 이는 군사협력이 좀 더 절실했던 것이 백제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오래된 강적인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는 동시에 잃어버린 영토의 탈환을 위해서 백제에게 신라는 중요한 군사협력의 대상이었다. 반면 신라의 경우 백제와의 군사협력은 이를 통해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고구려의 침공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공동 방어전에 임하는 양국의 태도 차이는 이러한 현실적 필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된다. 구체적으로 명시한 사료는 찾기 어렵지만 470년부터 474년까지 신라가 백제의 외곽 지역으로 생각되는 충북 남부지역에 축성한 사실에서 ‘동맹’의 공격 전략이 운용된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470년 신라의 삼년산성 축조는 고구려의 군사적 압력에 대한 백제와 신라의 공동 대응이면서 충주에 위치한 고구려의 군사 거점을 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백제는 고구려에 대한 공세를 준비하면서, 배후의 위협을 줄이는 동시에 고구려의 전력을 분산시킬 것을 목적으로 신라에게 전략적 요충지인 보은 지역에 성곽을 축성하여 충주의 고구려 군사 거점을 견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는 백제의 제안을 받아들여 삼년산성과 그 인근의 산성을 축조해 충주의 고구려 군사 거점 견제를 담당하였다. 이것이 ‘동맹’의 공격 전략 운용 방식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가 對고구려 공세를 취하면 신라가 그것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운용된 것이다. 470년과 486년 신라의 삼년산성 초축과 개축이 모두 백제가 고구려 공격을 시도한 것과 시점이 맞물리는 것은 실제로 이러한 공격 전략이 운용되었음을 입증하는 사례로 보았다. ‘나제동맹’의 공격 전략이 이렇게 운용된 것은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 공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리가 달랐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동맹’의 공격 전략은 상대적으로 백제의 고토 회복이라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일방의 利害를 위주로 구성된 ‘나제동맹’의 공격 전략은 신라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게 되면 원활한 운용이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로 그 전략의 파탄은 신라가 국가의 내실을 충실히 한 후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것과 함께 찾아왔다.

This article reviews the military management strateg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offensive and defensive(攻守) alliance”. This article aims at trying to reveal the truth of Silla and Baekje military cooperation by analyzing the details of joint military operation of the two countries in the historical records.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joint defensive battle of Silla and Baekje was successful operation. However, there was a difference between their positions. Baekje send reinforcements even without the Silla’s request for aid; Silla mostly send it when Baekje requests for it. The reason Baekje was so active in military cooperation was because it had to stop Goguryeo's southward advance and recapture the lost territory. Silla’s military cooperation was essential for this reason. Silla cooperate with Baekje to avoid interference by Goguryeo. The difference in position led the different aspect of the joint defensive battle. The fact that Silla built a castle in the south of Chungcheongbuk-do from 470 to 474 confirms the way the offensive strategy of “alliance” was operated. In 470, Silla's Samnyeonsanseong(三年山城) construction was a joint response of Baekje and Silla to the military pressure of Goguryeo. It was also intended to check the military base of Goguryeo located in Chungju. While preparing for the offensive against Goguryeo, Baekje needed to reduce the threat at the rear and disperse Goguryeo's power. For this reason, Baekje suggested Silla for castle construction in the strategic point, Boeun area. Baekje made Silla check the military base of Goguryeo in Chungju. Silla accepted the suggestion and built Samnyeonsanseong and other fortresses nearby. This was how the “alliance” offensive strategy operated. When Baekje took the offensive against Goguryeo, Silla supported it. The offensive strategy of the “Silla-Baekje Alliance” was operated in this way, because Baekje and Silla were able to obtain different benefits through the Goguryeo attack.

Ⅰ. 머리말

Ⅱ. ‘나제동맹’의 방어 전략과 백제의 구상

Ⅲ. ‘나제동맹’의 공격 전략과 삼년산성의 전략적 위치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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