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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扶餘隆 墓誌銘」의 새로운 判讀과 飜譯

New Reading and Translation of Epitaph of Buyeo Yung

DOI : 10.35160/sjekh.2017.04.25.7

이 논문은 백제 의자왕의 태자였던 「부여융 묘지명」에 대해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잡고자 작성한 것이다. 묘지명의 발견 시기와 출토지, 보관처 등에 대해서 밝혔고, 원탁본과 사진을 토대로 판독도 새롭게 하였다. 또한 번역문도 새롭게 제시하였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여융 묘지명」은 대개 1920년에 발견되었다고 알려졌으나, 1919년 중국 낙양 북망산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하지만, 묘지명의 정확한 출토지에 대해서는 알아낼 수 없었다. 묘지명은 출토된 이후 지석과 개석이 분리되어 보관되고 있다. 지석은 개봉도서관을 거쳐 현재 하남박물원에 소장되어 있고, 개석은 관림을 거쳐 현재 낙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묘지명의 개석은 전서 9자를 음각하여 묘주를 표시하였는데 판독에 문제가 될 부분은 전혀 없다. 지석은 가로 27행, 세로 27행의 방형으로 구획하여 729자를 새겨 넣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로로 26행에만 글자를 새기고 맨 마지막 행은 비워두었다. 해서로 670자를 음각으로 새겨 넣었다. 새겨진 글자 수에 대해 669자라고 알려졌으나, 1자가 행간을 침범하여 추가되어 모두 670자라는 것을 밝혔다. 출토 당시부터 훼손되어 판독이 불가능한 3자를 제외하고, 후대에 훼손된 부분은 발견 초기에 만들어진 탁본을 토대로 모두 판독하였다. 발견 초기부터 읽을 수 없었던 3자도 추독하여 묘지명 전체를 복원하였다. 새롭게 판독된 내용을 토대로 새롭게 번역을 하니 묘지명은 6개 부분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부여융의 출신지와 선조에 대한 내용이다. 두 번째는 성품과 재능에 대한 칭송을 한 후 백제 멸망 이후의 행적에 대해 기술했다. 세 번째는 죽음과 그에게 추증하고 시호를 내리면서 작성한 諡狀이다. 네 번째는 장례 시기와 장소에 대한 내용이다. 다섯 번째는 그를 찬양하는 명문을 비교적 길게 작성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誌題를 기록하였다. 이는 다른 묘지명에서 찾아보기 보기 어려운 것이다. 새로운 번역을 시도하였으나, 묘지명 작성 당시에 사용된 어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앞으로 계속 보완해야 할 과제이다.

This paper aims to correct the wrong understanding of the epitaph of Buyeo Yung 扶餘隆 who was the crown prince of Baekje king Uija 義慈王. The paper finds out when and where the epitaph tablet was discovered and who possess it now as well as newly reads and translates it according to the original rubbing and photograph of the inscription. Summary of the study is as follows: The epitaph of Buyeo Yung was discovered in Beimangshan 北邙山, Mang Mountain (north of Luoyang 洛陽, China) actually in 1919 while it has been known that it was unearthed in 1920. However, it is not known exactly where it was excavated. Lid of the epitaph, which was housed in the Kaifeng Library 開封圖書館, is now in the Henan Museum 河南博物院 in Zhengzhou 鄭州. The body, which was in Guanlin 關林, Shrine for Guanyu 關羽 is currently in the Luoyang Museum 洛陽博物館. Who was the tomb owner was inscribed on the lid stone in 9 characters of Zhuanshu 篆書, an ancient style of writing Chinese characters, which are readable. The body of the epitaph has 670 characters of Kaishu 楷書, which are not easy to read, It has been known that the number of characters was 669 so far. On the body is lined off into 27 horizontal rows and 27 vertical columns. Therefore 729 squares are made and the last row is empty. The paper reads all 670 characters including damaged characters, which are impossible to decipher: 3 characters damaged at the excavation are read by guessing meaning from context: the other characters damaged after the excavation are deciphered according to the original rubbing that was made right after the discovery. The inscription is divided into 6 parts according to the new translation based on the new reading. They are as follows: where Buyeo Yung came from and who his ascendants were ; praise of his personality and talent as well as what he did after Baekje's fall ; what is written for being given of Posthumous name ; when and where his funeral was held ; admiration for him ; title of the epitaph, which is never seen before. Even though the paper tries to translate the inscription newly, there are some words whose meaning is not known, which still remains to be solved.

Ⅰ. 머리말[

Ⅱ. 묘지명의 현황과 판독

Ⅲ. 묘지명의 표점과 번역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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