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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의자왕과 부여융·부여효

The King Uija and Buyeo-Yung·Buyeo-Hyo

DOI : 10.35160/sjekh.2017.04.25.79

자료가 빈약한 백제사에서 새로운 자료의 발견은 기존의 해석을 보완해줄 수 있는 기회이다. 이 논문에서도 새로운 자료를 기반으로 기존의 해석을 보완해 보았다. 먼저 미륵사지 서탑 사리봉안기의 자료를 기반으로 쌍릉의 피장자를 검토해 보았다. 쌍릉의 피장자는 무왕의 선비인 선화공주로 상징되는 사씨세력 출신의 왕비와 후비인 사탁적덕의 딸로 파악되었다. 무왕의 왕비를 선비와 후비의 두 명의 왕비로 파악할 때, 의자왕의 생모는 선화공주로 상징되는 왕비인 선비였다. 그리고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은 의자왕의 장자로, 의자왕의 초혼 대상인 사씨 출신의 아들로 추정해보았다. 장자인 부여융은 의자왕 4년에 태자로 임명되었다. 부여융은 백제멸망기까지 태자직을 띄고 있었으나, 655년경 은고가 새로운 왕비로 등장하자 점차 태자로서의 직위를 위협받게 되었다. 은고의 아들인 소왕 혹은 외왕인 부여효가 실질적인 태자로서의 권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고의 등장은 좌평을 독점하였던 대성팔족과 대립하고 있었던 30여명의 정원을 가졌던 달솔층인 신진귀족의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고의 등장과 함께 종래의 구귀족이었던 좌평층은 권력의 중추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좌평 성충과 흥수, 그리고 좌평 사택지적의 퇴임, 좌평 임자의 김유신과의 내통 등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이들의 대립은 나당연합군이 침공해오자 방어책을 논의하는 전략회의 석상에서 불꽃을 피우게 된다. 이들의 이러한 대립은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대한 효율적인 방어를 지연시키고, 결국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피난하였으나 웅진방령 예식진의 배신으로 백제의 운명은 최후를 향해 가고 있었다.

The discovery of new data in Baekje, where data are poor, is an opportunity to complement existing interpretations. In this paper, we have also supplemented the existing interpretation based on new data. First of all, I looked at the founders of Sari bonganki found in Mireuksaji. The Buried persons of Ssangneung was identified as the first queen, the symbol of Maitreya called the Princess of Sunwha, and as the second queen, the daughter of Satak-jeokdeuk. The Mother of the King Uija was the first queen of the King Mu, symbolized as Princess of the Sunhwa. And Yung was the eldest son of the King Uija and the first queen. He was appointed as a crown prince in 644. He had a crown prince job until Baekje was destroyed. His crown prince job was threatened in 655 when Eungo became a new queen. It is because the son of the Eungo, Hyo, had practically practiced the crown prince. The emergence of a queen, Eungo, created a new class of power-Dalsol class. Since then, the Jwapyeong class have gradually moved away from power. Their confrontation sparks fire at the meeting of the Strategic Council, which discusses defenses when the coalition forces invaded Baekje. These confrontations delayed effective defense against the attack of the coalition forces in the end. In the end, the King Uija escaped to Woongjin, but he was captured by the betrayal of Yesikjin-Captin Woongjin. The fate of Baekje was going toward the end.

Ⅰ. 머리말

Ⅱ. 의자왕의 혼인과 부여융의 출생

Ⅲ. 부여융과 부여효

Ⅳ. 대성팔족과 신진귀족의 대립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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