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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7세기 후반 신라의 대일외교와 大宰府

Silla's Daizhau Diplomacy with Japan in the late 7th century

DOI : 10.35160/sjekh.2017.12.27.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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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7세기 후반 신라와 일본의 관계를 ‘大宰府’라는 외교의 장에 초점을 맞추어 재구성하였다. 통일전쟁에서 승리한 신라는 679년을 기점으로 신문왕대 전 기간에 걸쳐 다양한 물품을 일본에 전달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치에서 경제 중심으로 신라의 대일외교가 전환하였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680년대 들어 신라가 대일교역을 추진한 것은 무엇보다 일본산 면에 대한 수요 증대에서 비롯한 경제적 이윤 추구에 있었음을 살펴 보았다. 일본 열도의 큐슈 서북단에 위치하는 다자이후는 7세기 후반 筑紫에 설치되었던 국제관계의 창구·거점이 된 지방 행정조직의 이름이다. 7세기 후반 신라와 일본의 대외 교섭이 다자이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다자이후에 체류하고 있던 신라사절에 대한 의례는 간소하게 거행되는 한편 다양한 신라산 물품은 다자이후 관인의 仲介 또는 전매를 거친 다음 중앙 조정에 운송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것은 신라사절 일행이 싣고 간 調物이 무상의 증여물이라기 보다는 상업적 성격을 띠는 유상의 교역품이었음을 말해준다. 요컨대 통일전쟁에서 승리한 이래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한 신라 조정이 주도적으로 일본과의 대외 교섭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의 경제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그에 어울리는 정치적인 안정이라는 내적 요인과 더불어, 무엇보다 황해와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던 신라의 해양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The diplomacy between Silla and Japan in the late 7th century seem to be week on the political purpose and to be strong on the economic trade. Silla deliver a large quantity of goods to Japan, It was signal that silla transferred economic center from political center. Daizhau(大宰府) where located at gateway of the Japanese Islands. Japan put Tsukushi-dazai(筑紫大宰) for a foreign envoy in the early 7th, it seem to reorganize Daizhau with official residence against defense of the diplomacy and the military to prepare for emergencies around the Korean Peninsula in the mid 7th. Trade between Silla and Japan at Daizhau took note of adopting practise method. A large quantity of goods which silla loaded was applied to management trade method carrying to curt after mediation or monopoly at Daizhau. This was new different method comparing existing tribute, and pioneering method of Daizhau trade between Silla and Japan 8-9th. The fact which silla was abled to promote economic diplomacy leadingly was related with taking hold of the sea right of the Yellow Sea.

Ⅰ. 머리말

Ⅱ. 년대 신라의 대일교역과 일본산 면

Ⅲ. 大宰府의 신라사절과 외교 방식의 변화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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