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7월 나·당연합군의 사비성 함락으로부터 663년 9월 주류성 함락에 이르기까지 신라는 3년 2개월에 걸쳐 백제 공략을 진행하여 자주적인 백제의 부흥운동을 진압하였다. 이 시기 신라는 한편으로 백제 주둔 당군의 현상 유지를 지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는 부흥세력의 봉기를 잠재우는데 진력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백제부흥운동’의 시각이 아니라 신라에 의한 백제 평정이란 관점에서 보면 동전의 양면처럼 새롭게 당시의 상황이 설명될 수 있다. 우선 신라의 백제 평정 과정이 길어진 가장 큰 이유는 660년 7월의 백제 정벌을 오랜 원한을 갚는 전쟁 즉, 642년의 大耶城 함락에 대한 보복으로 생각하였다 점에 있지 않을까 한다. 백제의 항복 이후 부흥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원인이 당의 기미체제 지배를 거부하는 것에도 있었지만 신라가 민족적 차원의 통일 의식에서 접근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발도 내재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신라의 백제 평정은 위기 상황의 극복과 부흥세력의 내부 분열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신라는 661년 4월에 두량이·고사비·주류성 등 중방 고사성 일대로 전투를 확대하였다가 크게 패함으로써 부흥운동이 백제 전 지역으로 확산되도록 하였다. 다행히 661년 9월 옹산성 전투에서 승리하여 번성하던 부흥운동의 기세를 꺾고 백제와 당의 유착을 방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662년에 신라는 복신과 풍왕으로 대변되는 부흥국의 권력 투쟁으로 지역 부흥세력의 긴장 완화와 방비 미흡 등이 야기된 것을 틈타 지라성·윤성·대산책·사정책 및 진현성·내사지성 등 금강 이동의 전략적 근거지 대부분을 차지함으로써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663년에 거열·거물·사평과 덕안성을 공략하여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백제 내부의 정변을 야기하여 부흥국을 몰락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During three years and two months from Sabi-fortress’s fall in July 660 to Juryu-fortress’s fall of Silla-Tang allied forces in September 663, Silla attacked in Baekje and suppressed revival movement of Baekje. In this period, on the one hand it assisted in maintaining the status quo of Tang’s army stationed in Baekje, on the other hand used it’s interest with quashing the constant uprising of revival powers of Baekje. Therefore, from not the general point of view of ‘revival movement of Baekje’ but the point of Silla’s suppression of Baekje, situation at that time could be explained newly like two sides of the same coin. Silla’s suppression of Baekje was too long, for it considered Baekje’s conquest as war of long revenge on Baekje, revenge on falling Daeya-fortress in 642. The revival movement of Baekje built up strongly after surrender of Baekje, for Baekje resisted that Silla didn’t approach to awareness of unification of ethnic backgrounds as well as refused Jimi Policy(policy based on Local autonomy) of Tang. For this reason, Silla was to use overcoming a crisis and internal division of the revival powers as suppression of Baekje. It extended battle to whole area of Jungbang Gosa-fotress including Duryangi-fortress, Gosabi-fortress, Juryu-fortress, and so on in April 661, but as suffering a huge defeat, the revival movement spread to the entire area. Luckily, as it won the Ongsan-fortress’s battle in September 661, took off the force of flourished revival movement and could prevent adhesion with Baekje and Tang. In 662, under the cover of easing tension and insufficient defense of regional revival power due to power struggle of reconstructed country represented as Boksin and King Pung, it prepared for foundation of counterattack by occupying most of strategic bases for Geum-river movement including Jira-fortress, Yun-fortress, Daesanchaek, Sajeongchaek, Jinhyeon-fortress, Naesaji-fortress, and so on. On the basis of these, it attacked on Geoyeol, Geomul, Sapyeong and Deogan-fortress, by occupying most of these regions and causing internal upheaval of Baekje, and destroyed the reconstructed country.
Ⅰ. 머리말
Ⅱ. 660년 9월 사비성 공방
Ⅲ. 661년 신라와 부흥세력의 전투 결과
Ⅳ. 662년 부흥백제국의 성립과 신라의 반격
Ⅴ. 663년 신라의 주류성 함락
Ⅵ.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