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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高句麗 南征 이후 新羅·加羅의 전술 변화 고찰

A Study on the Change of Military Tactics in Silla and Gara after Goguryeo’s Attack to South

DOI : 10.35160/sjekh.2018.12.30.9

삼국시대에 각국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무기체계와 전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무기 체계의 발달과 다양화는 전술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新羅와 加羅에서는 5세기 이전에 주로 보병전술이 활용되었다. 고고학적으로 4세기 이전에는 창과 칼, 활이 기본 무기로 확인된다. 반면 『晋書』에서는 三韓에서 楯과 櫓라는 방패를 사용했다고 기록하였다. 여기에서 櫓는 2명 정도의 인원이 사용하는 이동용 防壁 같은 방어구였다. 즉 5세기 이전 신라와 가라는 방패를 주로 활용하는 집단보병전술이 활용되었으며, 기병은 부수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반해 高句麗에서는 3세기부터 鐵騎 즉 重裝騎兵을 운용하였다. 안악 3호분의 出行圖를 통하여 고구려가 步騎 복합전술을 운용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周書』에서는 고구려의 槍類로 “戟·矟·矛·鋋”을 열거하였는데, 이는 고구려 무기의 발달을 알려주는 사례이다. 고구려 기병은 戟과 槊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漢族과 鮮卑, 百濟에 대응하는 전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400년 고구려 南征 당시에 동원된 步騎 5만의 존재와 그들의 복합전술은 신라와 가라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신라와 가라는 戰力 對稱의 일환으로 고구려의 중장기병을 도입하였다. 다만 고구려의 돌격전술을 완전히 이식받지는 못하고, 기존 전술을 융화시키면서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과도기를 거쳤던 것으로 추측된다. 국보 275호인 傳 김해 덕산리 출토 기마인물형토기는 중장기병이 방패를 들고 투창을 던지는 자세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사례이며, 보병을 상대할 때 활용된 전술로 볼 수 있다. 즉 한반도 남부에서 방패전술을 활용하던 군대를 주요 상대로 삼아 중장기병 투창돌격전술을 개발한 것이다. 그렇지만 중장기병 투창돌격전술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였다. 『北史』에서 신라의 무기체계가 중국과 동일하다고 하였고, 『三國史記』에서 7세기 신라군이 槊을 활용하는 기록이 보인다. 즉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장기병 돌격전술로 변화하였으며, 이는 신라의 삼국통일전쟁 때까지 이어졌다.

During Three Kingdoms Period, states developed their weapon systems and tactics for the victory. Improved and diversified weapons greatly affected military tactics. Silla(新羅) and Gara(加羅) used infantry tactics as a main method before 5th century. From the archeological discoveries, it is to be seen that spears, swords, and arrows were main items before 4th century. In the meantime, ≪Jinshu(晋書)≫ mentions that Three Han(三韓) used shield and mantlet. Mantlet was a movable protective gear just like protective wall and was operated by 2 persons at least. Whereas the cavalry was incidental, massed infantry with shields was a main tactic of Silla and Gara before 5th century. On the contrary, Goguryeo(高句麗) managed ‘iron cavalry(鐵騎)’ so-called heavy cavalry from 3rd century. When it comes to Picture of Departure of An’ak Tomb No.3, it is noticed that Goguryeo had compositive tactics consisting of infantry and cavalry. ≪Zhoushu(周書)≫ mentions halberd(戟), lance(矟), spear(矛), and javelin(鋋) as Goguryeo’s polearm which shows Goguryeo’s weapon development. Goguryeo cavalry mainly used halberd and lance. They developed tactics to confront Han(漢), Xianbei(鮮卑), and Baekje(百濟). In 400, Silla and Gara were shocked when they encountered Goguryeo infantry and cavalry which numbered 50,000. The states then introduced Goguryeo’s heavy cavalry as symmetry of military strength. However, it seems that they did not perfectly adopt Goguryeo’s rush tactic but went through transition period to make it harmonize with their existing strategies. A heavy cavalry of the Cup with a Warrior on Horseback, which is a National Treasure 275, is carrying a shield and about to throw a javelin. It must be a globally unusual tactic when a cavalry fought against a foot soldier. In other words, southern part of Korean peninsula developed shield tactics into rush tactics of heavy cavalry using javelin. However, the new tactic was not used for long. ≪Beishi(北史)≫ mentions that Silla’s weapon system was same as China. Moreover, ≪Samguksagi(三國史記)≫ pointed out that Silla army used lances. That is to say, the tactic was transformed to rush tactics of heavy cavalry as we know today and it lasted until the War of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Ⅰ. 머리말

Ⅱ. 고루려 南征 이전 신라·가라의 전술

Ⅲ. 고구려의 전술과 重裝騎兵 활용

Ⅳ. 신라·가라의 重裝騎兵 도입 및 돌격전술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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