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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고려전기 남한강 유역 塔碑의 현상과 조성배경

A Study on the Stone Monuments(the Stele for Monk) That Were Built in the South Han River Basin

DOI : 10.35160/sjekh.2018.12.3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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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남한강 유역에 건립된 탑비의 조성배경을 고찰한 글이다. 연구 대상 탑비는 10세기에 조성된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와 11세기 건립된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등이다. 남한강 유역에 건립된 10세기 탑비는 고승을 추앙하고 문도들을 우대하는 일반적인 탑비의 건립목적을 넘는 역할과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와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는 새로운 통일왕조 고려의 등장을 알리는 국가적 기념물 역할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는 건립 다음해에 왕권에 도전하는 충주유씨 세력의 구심점 역할도 하였다. 11세기 들어와 조성되는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는 탑비 본연의 목적인 고승에 대한 추모와 문도들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상징물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에는 문도들의 음기가 없다. 문도들의 음기가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법안종의 쇠퇴와도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과 탑비는 우리나라 석조조형물 중 가장 화려한 작품에 손꼽힌다. 이러한 탑비가 법천사에 조성된 이유로는 12조창제 확립으로 인한 흥원창의 확대, 계립령로의 정비를 통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 물류와 세곡의 집중 등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제도 정비는 11세기 중엽 법천사가 대대적인 중창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법천사의 경제적 번영은 해린의 문도들이 안정적인 수행을 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된 것으로 본문에서 언급하였다. 남한강 유역의 탑비는 문헌사료에서 파악할 수 없었던 나말여초기의 역사적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다.

9th Century stone monuments were constructed to commemorate the accomplishments of the monks who propelled Buddhism and pass on his legacy to next generation. As the era of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began in the 10th century, the political nature of the construction of the stone monument grew strong. Monuments built in the 10th century are strong political symbols in addition to being basic symbols of memorial and commemorating the monk. In this article, Monuments which were built durint the early 10th century are studied. The monument of Chung-Dam promotes the launch of new Unified Dynasty of Goryeo. During the reign King Kwang-Jong, the 4th king of Goryeo, he carried out a large-scale purging of high-ranking officials. Thanks to his policy, from the late 10th century, the kingship was stabilized and the political purpose of monuments was greatly reduced. Monuments built in the 11th century were done so with different purpose from those built in 10th century. Political system was stabilized since the end of the 10th century and the powers of the disciples who formed their own forces under their masters grew strong. Monuments built in the 11th century were used as a token of acknowledgment of the right of disciples who grew in power. Monuments built in the 11th century look different from the 10th century monuments that had political meaning related to the king. In case of the monument of Hae-Rin in Bup-Cheon-Temple, the unidimensional goal was to commemorate the grand monk that passed away. The more fundamental reason for its construction is to demonstrate that Hae-Rin's disciples inherited control of the temple he had stayed at. In order to do this, the space around the monument was created into an authoritative space like the palace, showing through the majesty of space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Hae-Rin and his disciples should be maintained.

Ⅰ. 서론

Ⅱ. 10세기 탑비의 현상과 조성배경

Ⅲ. 11세기 탑비의 현상과 조성배경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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