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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渤海의 古墳 外廓 造營物에 대한 硏究

The Study on Tumulus Surroundings in Palhae

DOI : 10.35160/sjekh.2019.04.31.47

이 연구는 발해 고분의 외부조영물의 현황과 배치, 그리고 그것에 나타난 의미를 다루었다. 먼저 외부조영물을 물길의 총상작옥과 연결하는 중국학계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물길전의 총상작옥은 시신의 보관 기능에 한정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다음으로 고고 성과를 토대로 외부조영물의 현황을 검토하고 크게 돌담형, 탑파형, 금당형, 능원형으로 분류하였다. 돌담형은 진한시대에 등장한 능침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외부조영물로 이해하였으며 탑파형은 돌담형을 모태로 당의 묘상탑과 전실묘의 영향이 융합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탑파형은 왕실고분군이 하나의 능역으로 조성되는 가운데 수묘와 추복의 조영물로 부가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와 달리 금당형과 능원형은 하나로 능역화된 왕실고분군과는 별도로 독자의 능원을 추구한 사례로 해석하였다. 육정산고분군의 제1묘역과 용두산고분군의 용해구역 제5대지는 왕실 고분을 하나의 능역으로 조성한 구역이라는 점을 제안하고 그 조성 주체를 문왕으로 추정하였다. 이를 해명하기 위한 첫 단서로 정혜공주묘와 정효공주묘에 주목하였다. 정혜공주묘와 정효공주묘는 서로 다른 묘제를 취하고 있지만 왕실무덤의 정중앙에 주변과 다소 다른 특이한 묘제로 안치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양 공주묘의 묘지석에서 ‘陪葬於○○之西原’이라는 구절을 포함한 것은 수사적 서술만이 아니라 이러한 의도를 표현한 것임을 재인식하였다. 문왕은 57년간의 긴 재위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고 그것을 자신의 직계를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왕실 능역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이는 곧 살아있는 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며 고분 외부조영물은 이를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에 따라 용해구역 제8대지의 금당형 조영물(M13과 M14), 삼릉둔고분과 하남둔고분과 같이 별도의 능원을 조성한 경우는 문왕이 주도하는 권력 관계와 왕실 내의 지위에 불편을 느끼거나 그를 능가할만한 권력을 영유하거나 소망하면서 별도의 묘역을 마련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이는 또 다른 살아있는 이의 의도가 드러나는 지점이며 이를 외부조영물로써 구현하고 있다.

This study focus on the status of Tumulus Surroundings in Palhae渤海 and its meanings. First, I doubt the point of the Chinese academy which Tumulus Surroundings in Palhae are originated from Chongsangjakok塚上作屋 in Mulgil勿吉. It is pointed out that the Chongsangjakok had only the capability to keep a dead body. Next, based on the archaeological results, the status of the Tumulus Surroundings was examined and classified into 5 types: stone fence type, Pagoda type, golden shrine type, and cemetery type. The stone fence type was understood to take a role as a Mausoleum that emerged in Jin-Han秦漢 age, and the Pagoda type was based on the stone fence type and fused with pagoda and brick toms in Tang唐. The pagoda type added the image of keeping the grave and cherishing the dead. On the other hand, the golden shrine type and the cemetery type are interpreted as a case of pursuing the unique cemetery as not as like one cemeteristic Royal tombs. The 1st site in Liudingshan六頂山 graveyard and the 5th site of Longhai龍海 tomb in Longtoushan龍頭山 graveyard was made by royal toms as one unified cemetery. It is argued that the principal agent of making it was King Mun文王. For this opinion, Jeonghe貞惠 Princess tomb and Jeonghyo貞孝 Princess tomb are focused on as clues. Although they made in different style each other, they are located in the center of the unified cemeteries with unique styles. In addition, it was noted that the phrase ‘buried besides the west part of ○○(陪葬於○○之西原)’in the graveyard of two Princess's tombs were not only a rhetorical statement but also an expression of their real making intention. While King Mun has regimed for 57 years, he raised the authority of the royal family and reorganized supreme power inner his direct line. It was focused that these surroundings became the parts of symbolizing the intention of the living man(King Mun). From this point, the another cases like as M10 and M14 at Longhai tombs, Sanling-tun三陵屯 tomb and Heonan-tun河南屯 tomb set up a separate graveyard by exerting from King Mun’s surpass or hoping for another power. These are the points where another living men tried to reveal and embody their intention through the new style surroudings.

Ⅰ. 머리말

Ⅱ. 고분 외곽조영물로 추정되는 유적 현황

Ⅲ. 고분 외곽조영물의 유형별 분포와 의미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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