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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사비시대 백제의 도교

Taoism of Baekje in Sabi Period

DOI : 10.35160/sjekh.2019.08.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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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로 천도한 직후 백제의 도교는 국왕에게 사후세계관으로 반영되었다. 국왕의 무덤들에서 도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후손들은 국왕이 죽어서 신선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후세계관으로 중요한 비중을 가진 도교는 백제의 현실 정치나 사회에서 상당한 의미를 나타내었다. 국왕이 사후세계가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것으로 그 방향을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국왕은 살아서 신선이 되어 불로장생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무왕대에 들어와서 국왕이 도교를 바탕으로 궁남지와 망해루를 만들면서 왕권강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신선이 되어 불로장생하기를 바랐던 사실에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백제의 귀족과 도교의 상호관계는 자세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이 경우 좌평신분의 귀족들에게는 국왕과 마찬가지로 현실세계에서 불로장생을 추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들 역시 신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교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은거하여 편안함을 얻는 데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왕도인 부여에 살고 있던 귀족들이 원림을 만들거나, 아니면 좌평출신의 사택지적이 정치적으로 몰락하면서 부여를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은거해가는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백제사회에 불교의 법화사상이 유행하면서 귀족들에게 더욱 확대되어 가는 추세를 보여주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After moving the capital to Sabi, Baekje’s Taoism influenced the king’s world view about the afterlife. The living descendants sincerely hoped that the dead king would become a Sin-sun, a Taoist hermit with miraculous powers. However, the king changed his direction to pursue the eternal youth and immortality during his lifetime, not in the afterlife. The king desired to obtain the eternal life by becoming Sin-sun while still living. It can be seen from the fact that the king Mu, who built a pond on the south side of the royal palace and built a pavilion facing the sea, sought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through Taoism and hoped to have the eternal youth and immortality at the same time. It is difficult to grasp the interrelation between Baekje’s Taoism and its aristocracy. The aristocrats of the Jwapyeong class seem to have pursued the eternal youth and immortality as well as the king. However, it is thought that they would have been more interested in withdrawing from the reality and achieving the inner peace as in the case of Silla. This is shown from the fact that the nobles who lived in the capital city of Buyeo made a garden with a pond, and the case of Sataek-Jijeok, who was politically ruined, removing himself from Buyeo and retreating elsewhere. This trend would have been escalated as the Thoughts of the Lotus Sutra of Buddhism gained its fame in the Baekje society.

Ⅰ. 머리말

Ⅱ. 유·불·도교의 관계

Ⅲ. 국왕과 도교

Ⅳ. 귀족과 도교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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