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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대가야의 공간적 범위에 대한 고찰

The Research of Political Range of Daegaya

DOI : 10.35160/sjekh.2019.12.3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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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가야의 발전과정 속에서 공간적 범위를 설정하려 하였다. 필자는 1~3세기의 삼한소국단계를 지나 4세기의 지역연맹체단계, 5세기 이후의 대가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가운데 각각의 단계를 추정할 수 있게 해 주는 盤雲里 瓦質土器遺蹟, 快賓洞古墳群, 池山洞古墳群 등의 고고학 자료들이 확인되는 데서 그러하다. 이 글은 그 연장선에서 대가야사의 공간적 범위를 검토해 보고자 하였다. 시간적 범위는 5세기 이후 대가야로 접어든 무렵부터 멸망한 시기까지로 한정하여야 하지만 이를 위하여 가야의 개략적 범위와 대가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의 공간적 범위도 함께 살펴보았다. 그 결과 대가야가 부체제로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고령 중심지가 王都 즉 上部로, 합천댐 상류지역인 봉산면 일대는 王畿 = 下部로 편제되었고 이들은 대가야의 직할령이었다. 나머지 우륵12곡에 보이는 지명 중 거창, 남원일대의 지역은 지방으로 편입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직접지배는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존 소국의 수장들은 자신의 지역에 대한 독자적인 지배가 가능하였다. 그러나 공간적 범위를 단계적으로 논하여야 함에도 거기까지 논의를 진전시키지는 못하였다. 이는 아무래도 고고학 자료와는 달리 시기별로 범위를 설정할 수 있는 기록의 부재를 원인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논의 또한 영성한 자료들로 인해 많은 억측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선학들의 질정을 바란다.

This article attempted to set the political range in the development of Daegaya(대가야). I divide the history of Daegaya into small stages of Byeonhan(변한) of the 1st and 3rd centuries, regional federations of the 4th century, and Daegaya after the 5th century. I classify them as archeological data such as the ruins of Banwoon-ri(반운리 와질토기유적), Koaebin-dong tombs(쾌빈동고분군) and Jisan-dong tombs(지산동고분군). The temporal range of this article, along with the range of the history of Gaya(가야), was about until the berging of Daegaya. By the time Daegaya entered Bu- system(부체제), Goryeong(고령) as Sang-bu(상부, =the capital), Bongsna- myeon(봉산면) of Hapcheon-gun county(합천군) as Ha-bu(하부), and Geochang-gun(거창군), Namwon-si(남원시) were incorporated into local governance system. This article has a lot of speculation due to the lack of feed. I wish you much teaching.

Ⅰ. 머리말

Ⅱ. 기록을 통해 본 가야의 공간적 범위

Ⅲ. 대가야지역연맹체의 공간적 범위

Ⅳ. 대가야의 공간적 범위와 우륵12곡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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