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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김유신의 入山修道와 그의 龍華香徒

Kim Yushin Entering the Mountain and His Yonghwahyangdo(龍華香徒)

DOI : 10.35160/sjekh.2013.04.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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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면서 一統三韓을 달성하는 데 신라군 최고 사령관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유신에 대해서는 각종 神異한 행적이 전한다. 멸망한 금관가야 왕국의 왕실 후손이면서, 신라 왕실의 피를 이어받는 그의 일생에서 이런 행적은 특히 10대에 두드러진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이 무렵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三韓을 一統하리라는 결심을 하고는 홀로 두 번 깊은 산중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향을 피우면서 그런 뜻을 이루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했다고 한다. 이 무렵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말갈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1차 입산수도는 17살 때인 신라 眞平王 建福 28年(611)에 있었다. 이 때 그는 中嶽이라고 해서 당시 신라에서는 여러 산 중에서도 가장 신성하게 숭배된 산의 어느 石崛로 들어가 齊戒하고는 그 자신이 외적을 물리치고, 신라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늘에 기도했다고 한다. 이런 기도에 감응해 기도 3일째 難勝이라고 하는 나이 많은 道人이 나타나 김유신에게 필요한 秘法을 전하면서 이를 의로운 일에 쓰라고 했다. 김유신은 그 이듬해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한다. 이번에는 장소를 바꾸어 인박산(咽薄山)의 깊은 계곡을 선택한다. 이웃 나라의 신라에 대한 침략이 더욱 급박해지자 그는 홀로 寶劍을 들고는 이곳으로 들어가 다시 향을 피우고 하늘에 같은 기도를 했다. 그에 부응해 신령한 별의 기운이 그의 칼을 통해 내려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의식을 행할 때, 김유신은 ‘龍華香徒’라고 일컫던 종교 혹은 군사적 결사체의 우두머리인 花郞이었다. 화랑은 김유신이 태어나기 이전인 진흥왕 원년(540)에 창설된 젊은 남성 위주의 종교 군사적 결사체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며, 일명 風月主라고도 했지만, 김유신이 그런 자리에 임명되었을 때는 특별히 그가 이끄는 결사체를 ‘용화향도’라고 불렀다. 김유신의 두 차례에 걸친 入山修道와 그가 이끈 용화향도라는 결사체는 어떠한 종교 혹은 사상에 기반을 둔 것인가? 이런 의문을 해명하고자 한 것이 이번 글의 목적이다. 이와 관련해 이들이 샤머니즘 혹은 불교와 관련된 것이라는 이해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도교와 밀접하다. 특히 성스러운 기운을 품은 산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향을 피우면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神이라는 영적인 존재를 통해 얻고자 하는 행동은 샤머니즘이 아니라 도교 의식이다. 나아가 그의 입산수도에 감응해 김유신에게 신적인 힘을 주었다는 나이 많은 道士 이름이 難勝이며, 이런 이름이 불교경전에 더러 보인다고 해서 이런 행적을 불교와 밀접한 것으로 생각하는 연구자도 많다. 하지만 난승이라는 이름이나 용어는 도교 경전에서도 자주 보인다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그가 入山修道를 결행할 무렵 김유신이 이끈 결사체를 ‘龍華香徒’ 또한 종교사상의 측면에서 어디에 유래하는지에 대해서는 기존 학계에서는 불교를 압도적으로 지목한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龍華香徒’라는 명칭 때문이다. ‘龍華’와 ‘香徒’라는 두 가지 용어가 합성된 이 중에서도 ‘龍華’는 미래에 부처가 될 예정이면서, 지금은 도솔천이라는 천상세계에 사는 미륵보살이 장차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說法한다는 장소인 나무를 의미한다. 불교경전에 의하면 미륵보살은 龍華라는 나무 아래에서 세 차례 대중에게 불법을 설파한다고 한다. 이런 점에 주목해 기존 학계에서는 김유신이 이끈 ‘용화향도’라는 결사체가 불교를 기본 정신으로 삼는 종교, 군사 결사체로 보았다는 것이다. ‘龍華’라는 명칭으로 보아 그가 이끈 ‘용화향도’에 불교의 색채가 완연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의 사상적 기반이 불교‘만’인가는 전연 별개의 문제다. 불교 사상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미륵을 신봉하는 흐름, 그리고 죽어서 서방 극락세계에 다시 태어나고자 열망하는 아미타불을 중시하는 정토신앙은 그 신학 체계가 인간 세계의 육신을 벗어 버리고 ‘神仙’이라는 영원불명하는 존재가 되어 저 천상세계로 훨훨 날아오르고자 하는 도교의 신학 체계와 매우 흡사한 대목이 있다. 실제 김유신이 활동한 무렵 중국과 한반도에서 제작한 佛像이나 道像을 분석해 보아도 미륵신앙과 정토신앙이 도교의 神仙 사상과 혼합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살핀 김유신의 행적을 보면 그에게서는 불교도의 색채만이 아니라 도교도라는 흔적 또한 너무나 뚜렷하다.

Many mystical conducts are recorded for Kim Yushin (595~673), who played the most important role in achieving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by defeating Baekje and Goguryeo as the commander-in-chief of the Silla army. As descendant of the royal family from the fallen Geumgwan Gaya Kingdom, these conducts are especially conspicuous in his teens. According to records it was this period that he came to the resolution to achieve unity of the three kingdoms. He entered the mountains twice to cleanse his body and burn incense to pray to heaven for the achievement of his resolution. At this time, Silla was suffering from the repeated invasions of Goguryeo, Baekje and Malgal. He first entered the mountains when he was 17 years old, during the 28th year of King Jinpyeongwang (611). He went to Mount Jungak, known to be the most spirituous, and most revered mountain of Silla and entered a stone cave. He cleansed himself and asked the divine spirits to permit him the strength and power to rid the invasive forces and protect Silla. Moved by his will and prayer, an elderly master called Nanseung appeared giving him the needed secret method and entreated him to use it for righteous causes. Kim Yushin repeats a similar act the next year. He changes destination and goes to a deep valley in Mount Inbaksan. It was when foreign invasions of Silla were even fiercer than before, and he alone took a sword of honor, burned incense and prayed to the heavens. In answer to his prayer, the energy of the divine stars came down to him through the sword. During his years of conducting such rituals, Kim Yushin was the Hwarang(花郞), the leader of the group of men called the Yonghwa hyangdo (龍華香徒). Hwarang refers to the leader of a group of young men, banded for religious and military purposes, a system that was established in the 1st year of King Jinheungwang (540). The leader was also called Pungwolju (風月主) and at the time when Kim was Hwarang, his group of men were called the Yonghwa hyangdo.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basis of the religion or the philosophy that lied under the two consecutive events of Kim entering the mountains and the Yonghwa hyangdo group that he led. Until now it has been commonly understood that these acts were conducted on the basis of Shamanism or Buddhism. However they are closely related to Taoism. In particular to enter into a mountain with divine energy, to cleanse oneself and burn incense and to pray for a certain wish to a divine being called god (神) is not shamanistic but clearly Taoist. There are also academic opinions that these acts originate from Buddhism, referring to the name of the elderly master being Nanseung which appears in Buddhist scripts. However the name Nanseung also appears quite a number of times in Taoist scripts as well. To identify the religious foundation of the group Yonghwa hyangdo, whilst Kim as the leader repeatedly entered the mountains to pray, many existing research conclude Buddhism to be the basis. This is particularly because of the name of the group which is a combination of two words yonghwa and hyangdo. Yonghwa refers to the Nagavrksa tree, or Bodhi tree under which the Maitreya Bodhisattva, currently in Tusita, would stand and teach his disciples in the future. According to Buddhist scripts, the Maitreya Bodhisattva preaches three times under the Nagavrksa tree. Upon this fact, the existing studies identify the religious basis of the Yonghwa hyangdo to be Buddhist. The connection with Buddhism is clearly shown in the name of the group. However this does not immediately imply that Buddhism was the only ideological foundation.

Ⅰ. 西學 이전의 圓光

Ⅱ. 聖骨과 眞骨, 그 사상적 연원

Ⅲ. 中嶽石崛 齊戒·咽薄山 深壑之中 吿天祈祝

Ⅳ. 김유신의 入山修道 의식과 도교 齋儀

Ⅴ. 龍華香徒와 미륵신앙

Ⅵ. 도교신학이 포섭한 미륵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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