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한국고대사탐구학회.jpg
KCI등재 학술저널

9세기 비로자나불 조성의 배경과 의미

The Context and Meaning of the Vairocana Image in the 9th Century

DOI : 10.35160/sjekh.2013.04.13.139
  • 15

신라 하대 비로자나(Vairocana)불의 유행은 당시 신라 사회와 불교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불교 교리적으로는 화엄종과 선종, 밀교가 비로자나를 중심으로 융합되는 현상이 영향을 주었다. 선종이 지방 세력자들에게 지배층이 될 수 있다는 사상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이로 인해 선종사찰에서도 비로자나를 모셨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명문이나 문자 근거가 있는 비로자나불은 오히려 왕실이나 중앙 관리와의 관계를 시사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인 혼란이 계속되었던 신라 하대에 즉위한 왕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왕실을 안정시키고 애써 얻은 자신들의 왕위의 정통성을 합리화하고자 했다. 이들의 활동은 각지의 사찰에 시주하여 탑과 불상을 건립하거나 승려들을 초빙하여 講經, 讀經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하 무구정경 )에 따라 사리, 小塔, 陀羅尼를 봉안하는 願塔을 건립하고 비로자나불을 조성하기도 했다. 『무구정경』에 근거한 탑·불상 조성과 다라니 봉안은 밀교적인 의례이지만 이미 8세기 중반부터 신라에서 성행했던 것을 보면 밀교에 대한 인식이 신라에 널리 퍼져 있었고, 지권인을 수용하여 비로자나를 만들 기반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세기에 지권인 비로자나불 조성이 유행한 것은 기본적으로는 화엄사상에 입각한 것이었고, 밀교와 선종, 화엄이 비로자나를 교주로 여기는 교리를 공유한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비로자나의 유행을 지방색과 결부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중대신라에서 왕권의 절대성을 비로자나에 견주었던 생각은 하대에 비로자나불 조성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왕실의 발원이나 중앙정권과 . 관련 있는 하대의 비로자나불 조영이 명문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지방색을 강조하는 것은 하대의 정치적 혼란과 지방 호족의 발흥이라는 사회상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과장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Popularity of Vairocana in the Unified Silla Dynasty was natural phenomenon due to changes in both society and Buddhism at the time. During those periods, it was influenced by the ideas that almost all the sects like Avatamsaka Sect, Chan Buddhism, and Esoteric Buddhism worshiped Vairocana. Chan Buddhism allowed people with powers in region believe that they could become a king or a dominant power. Thus in this reason it was believed that even Chan Temple worshiped Vairocana, which was compared to the king. However, images of Vairocana with inscription were often related to the Silla Court or court officials. In order to secure their throne in the time of political chaos, kings in the late Unified Silla Period patronized temples in various parts of the country to build Stupas and Buddhist statues. Also, they invited Buddhist monks for lecturing and reading sutras. The royal family built stupas that enshrined sarira, miniature stupas, and dharani according to Raśmivimalaviśuddhaprabhādhāraņī(無垢淨光大陀羅尼經). They also created statues of Tathagata Vairocana with Bodhaśrī mudra(智拳印). This means esoteric ritual was already popular in Silla since the mid-8th century. It is believed that esoteric Buddhism was widely known in Silla and they were ready to create images of Vairocana Buddha image with Bodhaśrī mudra. Many Vairocana images with Bodhaśrī mudra in the 9th century was based on Avatamsaka ideal and was resulted from the fact that the various Buddhist sects worshipped Vairocana as their main Buddha. Scholars generally tend to connect popularity of Vairocana with local tradition and patronage. However, the court patronage of many Vairocana images with Bodhaśrī mudra in the 9th century was verified through the inscriptions. Thus the connection of royal authority to sculpting Vairocana in the mid Unified Silla Dynasty continued through the late Unified Silla. Emphasis on the local tradition was intentionally exaggerated due to the political chaos in the late period and by the sudden rise of power in local clan.

Ⅰ. 서론

Ⅱ. 비로자나의 이념과 신라 하대 불교에서의 위치

Ⅲ. 9세기의 비로자나불 조성

Ⅳ. 맺음말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