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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新羅中代 華嚴學僧 表訓考

A Study on a Great Monk Pyohun of Hwaeomjong in the Middle Period of Silla

DOI : 10.35160/sjekh.2013.08.1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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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訓은 신라중대 불교사에서 주목할 만한 고승이다. 그러나 그에 관한 자료는 단편적으로 전하고 있어서 그의 생애 전반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표훈의 생애와 관련된 자료는 이 부석사를 창건하고 傳敎에 전념하기 시작했던 문무왕 16년(676)으로부터 경덕왕대(742 765)까지 거의 100년에 걸쳐서 散見되기에 문제가 된다. 이런 등의 문제로 표훈은 의상의 직제자가 아니라는 주장까지도 대두했다. 과연 표훈은 의상의 직제자가 아닌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본고에서는 의상과 표훈의 관계를 주로 살펴보되, 표훈의 생존 시기와 중요한 활동에 대해서도 검토함으로써 신라 중대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을 고찰하고자 했다. 표훈은 의상으로부터 직접 수업한 10대 제자 중의 한 명이다. 이 사실은 『大記』 및 『古記』가 전하는 표훈과 의상의 문답 기록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표훈의 활동이 돋보이는 시기는 8세기 중반인 경덕왕(742 764) 때다. 그는 750년 무렵에 황복사에서 大正을 만났고, 757년 무렵에는 경덕왕을 만났으며, 760년에는 황복사에서 화엄을 강의했다. 표훈이 의상 문하에서 수업했던 점을 감안하면, 경덕왕 때의 그의 나이는 70대, 혹은 80대 정도의 노령이었을 것이다. 의상이 돌아간 702년에 표훈의 나이가 20세였다고 가정해 보더라도, 그가 황복사에서 강의하던 때는 78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표훈은 장수했던 것 같다. 표훈은 김대성의 불국사 창건에도 적극적으로 자문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을 얻어 후사 잇기를 열망하고 있던 경덕왕에게 나라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신라의 마지막 聖人으로 존숭되기도 했다. 표훈이 興輪寺 金堂의 중의 한 분에 포함되었던 것도 신라 중대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높은 位相 때문이었다.

Pyohun(表訓) is a notable eminent monk in the Buddhist history of mid Silla. However, it is not easy to identify his whole life systematically because data about him are fragmentary. Moreover, data relating to whole life of Pyohun appears scattered over nearly 100 years from 676, the 16 years of munmuwang(文武王) when Uisang(義相) had built Buseoksa(浮石寺) and started to concentrate on his missionary work, until the reign of Kyongdokwang(景德王). Even, the claim that pyohun is not immediate disciples of Uisang was emerged due to this problems. Is really not Pyohun an immediate disciple of Uisang? To answer this question, This paper tried to investigate his status in the Buddhist history of mid Silla, by not only inquiring into the relationship between pyohun and Uisang, but also thoroughly examining for the survival times and the important activities of pyohun. Pyohun is one of the ten disciples who were directly taught from Uisang. This fact is identified by the dialogues between pyohun and Uisang, written on 『Daegi(大期)』 and 『Gogi(古記)』. However, the time when the most remarkable activities of pyohun revealed was eight mid century(742~764, the reign of gyeongdeokwang. He had met Daejeong(大正) at Hwangboksa(皇福寺) in nearly 750, had met gyeongdeokwang around 757 and lectured Hwaeom(華嚴) at Hwangboksa in 760. Considering that Pyohun was taught from Uisang, his age in the reign of Kyongdokwang might be seventy or eighty years old. Assuming Pyohun was twenty years old in 702 when Uisang passed away, the time he lectured at Hwangboksa was the age of 78. Perhaps pyohun seemed to have a long life. Pyohun had actively consulted when Kim Dae seong(金大城) built Bulguksa(佛國寺). And he pointed out to gyeongdeokwang who was eager to have a son and hand over the throne to him that the country might fall into chaos. He got respected as the last saint of Silla. Pyohun included as one of the ten saint of the main building in heungryunsa(興輪寺) because of his high position in Buddhist history of mid Silla.

Ⅰ. 머리말

Ⅱ. 표훈, 의상문하에서의 수업

Ⅲ. 표훈과 황복사, 그리고 화엄 강의

Ⅳ. 표훈과 대정, 그리고 경덕왕

Ⅴ.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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