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高僧傳』 安含傳은 「安含碑」와 「安含傳」으로 추정되는 전기물을 바탕으로 覺訓이 찬술하였다. 安含은 601년 중국에 유학하여 5년간 공부한 뒤, 인도 승려 毘摩羅등과 함께 귀국하여 佛法을 전한다. 이후 신라에서는 인도로 佛法을 공부하러 가는 승려들이 많이 나왔다. 이에 각훈은 안함을 弘法을 펼친 聖人으로 평가하였다. 안함이 앞날을 예견하는 讖書를 지었는데, 모두 국왕의 權威와 국가의 安危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각훈은 讖書의 내용이 모두 명확하게 맞아들었다고 하면서 안함의 預知力을 높이 평가하였다. 각훈이 안함전을 찬술한 의도는, 高僧安含의 預知力을 통해 신라가 국가불교로 나아가야 하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는 불교의 위대성을 선양하는 한편으로, 국가를 위해서는 護法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一然은 『三國遺事』에 안함과 安弘에 대한 전기를 立傳하지 않았다. 이는 일연이 새로운 자료를 얻지 못한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각훈이 「안함비」의 내용을 토대로 안함전을 찬술하여 전한 것은 신라불교사의 이해는 물론 史學史上에 있어서도 그 의미가 적지 않다.
Anhamjeon(安含傳) of Haedong Kosung Chon( 海東高僧傳) was written by Gak Hun(覺訓) based on the biographical writings estimated to be Anhambi(「安含碑」) and Anhamjeon(「安含傳」). Anham(安含) went to China for further study in 601 and studied there for five years. After returning with Indian Buddhist priests such as Kapimala(毘摩羅), he spread the Buddhism in the country. Since then, many Buddhist priests went to India to study the Buddhism. Gak Hun thus evaluated Anham as the saint that spread the Propagating Buddhism. Anham wrote Chamseo( 讖書) that predicted the future and contained content all related to the authority of the king and the safety of the country. Gak Hun thought highly of his power to foresee, saying that all the content of the book was accurate. Gak Hun wrote Anhamjeon to grant the legitimacy of Silla becoming a Buddhist nation through the high priest's power to foresee. It exalted the greatness of Buddhism and also highlighted the need for the defense of the constitution for the country. Ilyeon(一然) did not include biographies of Anham and Anhong(安弘) in his Samgukyusa( 三國遺事) probably because he failed to obtain new materials. In that context, Gak Hun's compilation of Anhamjeon based on the content of Anhambi holds great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historiography studies as well as in the understanding of Buddhist history of Silla.
Ⅰ. 머리말
Ⅱ. 안함전 찬술 내용
Ⅲ. 각훈과 일연의 안함·안홍 인식
Ⅳ. 각훈의 찬술 의도와 의의
Ⅴ.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