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는 阿旦城에 관한 언급이 3곳에 남아 있다. 여기서 서울의 아차산성과 단양의 온달성도 아단성으로 일컬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같은 2곳의 아단성 가운데 온달 장군이 전사한 곳은, 온달이 출정하면서 탈환 목표지로 지목한 '계립현과 죽령의 서쪽 땅'에서 찾는 게 온당하다. 바로 이 곳은 충청북도 단양을 포함한 남한강 상류 지역이 된다. 더욱이 고구려 別都이자 유수한 製鐵産地였던 忠州 지역은 고구려가 겨냥한 탈환의 1차적 목표였을 것임은 자명하다. 고구려가 이곳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소백산맥과 연결된 요충지인 온달성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온달 장군이 전사한 아단성은 온달성으로 지목되어 진다. 실제 단양군 영춘면을 비롯한 충청북도 일원에서는 온달과 관련한 전설이 남아 있다. 반면 온달 장군이 온달 관련 전설도 존재하지 않는 한강 하류인 아차산성 부근에서 전사했다는 것은 정황상 맞지도 않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阿且城 표기의 배경을 조선 개국 후 太祖의 後諱인 '旦'에 대한 避諱 주장도 있었지만 조선시대 官撰書에서는 여전히 阿旦城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따라서 '阿且城' 표기에 대한 避諱 주장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온달성의 초축 국가와 관련해 北壁에 성문이 있었는데 폐쇄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北門을 폐쇄할 수 있는 정황을 놓고 본다면 방어 방향이 북쪽인 신라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고구려의 남진 공세에 시달렸던 신라의 절박한 입장이 포착되는 면면을 온달성이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고찰을 통해 온달성은 백제 때 축조되어 고구려가 활용했음을 밝혔다. 온달성이 소재한 단양을 비롯한 남한강 상류 지역은 무려 150년간 고구려 영역으로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이곳은 고구려인들이 故土 개념 속에서 失地回復을 운위할 수 있었다. 또 이러한 이유와 명분으로 고구려는 이곳에 대한 회복을 집요하게 추진했던 것이다.
There have been three theories about Adan Fortress in Samguk Sagi. With this, the truth which is that Ondal Fortress was called Adan Fortress is come out. Among them, the real Adan Fortress which Ondal died in a battle must be located in the west of Gyeribhyun and Jukryung which Ondal pointed out as a target area. That is the upper region of the Han River including Chungcheongbuk-do Danyang. Moreover, Chungju which was the vice capital of Goguryeo and a magjor producer of iron must be the ultimate goal of Goguryeo. Goguryeo had to attack Ondal fortress to reclaim the area because it was the strategic point which was a lodgement area to Sobaek Mountains. Therefore, Adan Fortress where Ondal died must be Ondal Fortress. As a matter of fact, there is no story about Ondal in Danyang County Yeongchun Myeon and Chungchongbuk-do Ilone. On the other hand, it is also ridiculous that Ondal died around Acha Fortress which has no legend of Ondal. Some studies say that the birth background of Acha Fortress is to avoid using the word Dan which was also used as a second name of the first king. However, There were still Adan Fortress in the books of the Joseon Dynasty era. Therefore, the opinion about Acha Fortress is wrong. There used to be a castle gate at the north rampart of Ondal Fortress. The gate was closed to defend against Goguryeo. With that fact, Ondal Fortress shows Shilla's pressingness against Goguryeo. For many reasons, Ondal Fortress was bulit in Baekje era and used by Goguryeo. Danyang and upper side of South Han River used to be a territory of Goguryeo for 150 years. Therefore, Gogureyeo were constantly able to agitate recovering territory in that area.
Ⅰ. 머리말
Ⅱ. 阿旦城의 위치 究明
Ⅲ. 온달성의 初築국가 探索
Ⅳ.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