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4세기 중엽에 이르러 예성강을 넘어 황해도 방면으로 진출하였으며, 옛 대방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와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백제는 369년에 벌어진 치양의 반걸양 전투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멸악산맥 이남지역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백제군은 2년 후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살해하는 등의 전과를 거두었는데, 신계-수안을 경유하는 防垣嶺路 혹은 평산-서흥-황주를 거치는 慈悲嶺路를 이용하여 북상하였다. 백제는 근구수왕의 즉위 후 다시 평양성을 공격하는 등 북진 공세를 늦추지 않았지만, 치세 후반기에 이르러 잦은 전쟁과 질병 등으로 인해 내우외환이 거듭되면서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백제는 침류왕을 거쳐 진사왕 때에 이르러 고구려와 치열한 공방전을 재개하였다. 진사왕은 15세 이상의 백성을 동원하여 강원도 이천 부근의 팔곤성에서 시작하여 개성 북쪽의 청목령을 경유한 후 개성 서쪽 해안의 礪峴에 이르는 關防을 축조하였다. 마식령산맥의 남서쪽 부분에 해당되는 臨津北禮成南正脈의 주요 고갯길을 통제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백제가 마식령산맥의 주요 교통로를 통제하기 위해 석현성 등 관방을 축조하자, 고구려는 고국양왕 때에 신계의 수곡성에서 강원도 이천-평강을 경유하여 영서지역으로 우회 진출하였다. 백제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후 대대적인 남진경략을 펼치면서 밀리게 되었다. 광개토왕은 석현성을 비롯한 10성을 함락하는 등 마식령산맥 계선에 설치된 관방체계를 무너뜨린데 이어 관미성마저 점령하였다. 석현성은 청목령의 관문을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관미성은 개풍군 백마산에 위치한 채 강화해협을 거쳐 한성에 이르는 水路를 관할하였다. 백제는 아신왕이 즉위한 후 임진강 南岸에 여러 성곽을 축조하거나 수축하는 등 방어태세를 강화하면서 북방의 失地 회복에 나섰다. 백제는 예성강 중류지역의 浿河(금천 저탄)와 신계 수곡성에서 고구려와 혈전을 치르는 등 마식령산맥의 이남지역까지 진출하였다. 아신왕의 실지 회복 노력은 고구려의 반격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다. 아신왕은 戰力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가야와 왜국의 병력을 여러 지역의 전투에 끌어들였다. 양국의 치열한 공방전은 아신왕이 405년에 薨逝하면서 끝나게 되었으며, 다시 전란이 재개된 것은 비유왕 때에 해당되는 440년 무렵이었다.
The Baekje Kingdom advanced towards Hwanghaedo beyond the Yesung River in the middle fourth century and in order to occupy the old Daebang area, it fiercely opposed the Gogyryeo Kingdom. The Baekje succeeded in occupying the southern area of the Myolak Mountains with reserve energy with which it won the Bangeolyang Battle of Chiyang in 369. Also, the Baekje army invaded the Pyongyang Fortress 2 years later and successfully killed King Gogukwon. The Baekje kept advancing north by invading the Pyongyang Fortress after King Geungusoo grasped power, but in the late period of his reign, as internal and external strife continued due to frequent battles and disease, Bakje was in a state of remission. Baekje restarted fierce battles with Gogyryeo in the reign of King Jinsa through to King Chimryu. King Jinsa mobilized the people over the age of 15 and built a military defense system starting from the Palgon Fortress in Ichon, Gwangwondo through Chongmokryong to the north of Gaesung reaching from Yeohyun on the coast west to Kaesung. When the Baekje built a military defense system including the Sukhyun Fortress to control the main traffic routes in the Masikryong Mountains, Goguryeo advanced towards the Yeoungseo Area through Ichon and Pyonggang in Gangwondo from the Sugok Fortress in Singye during the reign of King Gogukyang. The Baekje were pushed as the Great King Gwanggaeto of Goguryeo engaged in a southern advancement. King Gwanggaeto conquered ten fortresses of the military defense system in the Masikryong Mountains including the Sukhyun Fortress and occupied even the Gwanmi Fortress. The Sukhyun Fortress played a role in controlling the gate to Chongmokryong and the Gwanmi Fortress which was located in Baekma Mountain of Gaepung County controlled the marine traffic route to Hansung through the Ganghwa Straits. King Asin of the Baekje was active in the recovery of lost land in the Northorn area while having a reinforcing defensive attitude, such as building a few fortresses south of the Imjin River. His effort to recover the land was met with difficulty because of counterattacks by the Goguryeo. King Asin called on the military power of Japan and Gaya to regain military strength. However, in 405 when the king died, the fierce battles ended.
Ⅰ. 머리말
Ⅱ. 帶方故地진출과 평양성 공격
Ⅲ. 고구려의 남진 공세와 백제의 관방체계 구축
Ⅳ. 백제의 반격과 고구려의 응전
Ⅴ.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