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次頓은 奈勿麻立干의 5세손으로서 우리가 우산국과 가야를 정벌한 장군으로 알고 있는 異斯夫의 조카다. 이사부와 法興王은 왕위계승을 놓고 내물왕계와 지증왕계로 맞서고 있었으며, 이들은 사상에서도 風流道 대 불교로 팽팽히 대립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신라 정치는 啄部와 沙啄部가 권력을 분점한 이원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6세기경 탁부와 사탁부의 수장이 이사부와 법흥왕이다, 이 때문에 이사부를 수장으로 한 탁부ㆍ풍류도ㆍ내물왕계의 반대로 말년에 왕위를 내놓고 스님이 되고 모든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의 계율을 모든 백성에게 교시로 내릴 정도로 불심이 깊었던, 사탁부ㆍ불교도ㆍ지증왕계의 수장인 법흥왕이 왕위에 오르고서 15년이 되도록 불교를 공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양자의 대립은 풍류도의 성지였던 天鏡林에 법흥왕이 大(王)興輪寺를 짓는 일을 강행함으로써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 정점에서 법흥왕은 흥륜사 창건의 죄를 이차돈에게 뒤집어씌워 풍류도를 따르는 신하들의 반대를 수용하는 한편, 자신의 명령을 지체한 죄목으로 가차 없이 목을 잘라 왕의 권위를 높이는 동시에 興法의 의지를 더욱 강력하게 펼쳐나갔다. 탁부ㆍ풍류도ㆍ내물왕계에 소속된, 이사부의 조카인 이차돈이 불교를 위해 순교하자 양자의 대립관계는 무너지게 되었다. 이 틈을 계기로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는 한편, 이사부를 비롯한 신권ㆍ탁부ㆍ풍류도ㆍ내물왕계를 제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사부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고집 때문에 당시까지 가문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를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법흥왕의 반격에 그리 강하게 대응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법흥왕은 불교를 왕권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삼으면서 골품제를 시행하여 지증왕계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체제를 확고히 하였으며 이후 실제로 지증왕의 후손만이 왕위에 오른다. 대신 불교세력은 절 안에 풍류도의 신격인 산신이나 용왕을 모시는 산신각이나 용왕당을 배치하는 등 풍류도와 불교가 공존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으며, 풍류도 세력 또한 풍류도의 신격은 물론 부처님의 힘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재앙을 없애고 복을 불러올 수 있음을 깨닫고 불교를 수용한다.
Buddhism did not enter the kingdom of Silla until the 5th century. The common people were first attracted to Buddhism here, but there was resistance among the aristocrats. There were Tak-bu(a party of Silla court) and Satak-bu(a party of Silla court) in Silla dynasty during the 6th century. The member of Tak-bu believed in Pungryu-do(a traditional religion of Silla). However, the Satak-bu did Buddhism. The men of Tak-bu were familiar with King Soji(r. 479~500), but those of Satak-bu King Jijeung(r. 500~514). The leader of Tak-bu was Isabu, a general and politician, and the 4th generation descendant of King Naemul. The leader of Satak-bu was King Beopheung(r.514~540). Early in his reign, Beopheung had desired to promulgate Buddhism as the state religion. However, Isabu opposed him. Two parties stood against each other. The conflicts between two parties got solved by Ichadon(501~527). He was the 5th generation descendant of King Naemul(r. 356~402) and a nephew of Isabu, and member of Takbu. However, he was a Buddhist monk and advisor to the king Beopheung. He devised a strategy to overcome court opposition. Ichadon prophesied to the king that at his execution a wonderful miracle would convince the opposing court faction of Buddhism's power. When Ichadon was executed, his prophecy was fulfilled. The omen was accepted by the opposing court officials as a manifestation of heaven's approval, and Buddhism was made the state religion in 527 CE.
Ⅰ. 머리말
Ⅱ. 異次頓의 가계
Ⅲ. 異斯夫와 法興王의 대립과 異次頓의 순교
Ⅳ. 맺음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