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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담론 제2호.jpg
학술저널

1865년 公州·石城 지역의 漕運船 沈沒과 拯出

이 글에서는 『충청수영계록』에 기록된 1865년의 침몰 기사 중 공주와 석성에서 징수한 조운선이 침몰한 내역, 구호 조치, 배상 조치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1865년은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고 3년차에 접어들던 시기로, 전정과 군정, 환곡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감행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한성으로 올려보내는 세곡의 양이 늘어났으나 그 가운데에 침몰 사고도 빈번히 일어났다. 1865년 공주와 석성의 조운선 침몰 사건은 배치여라는 경강상인의 배를 임대하여 두 지역의 조세를 운송하는 도중, 침몰사고가 일어나자 그 과정을 조사하고, 결론짓는 내용들이 상세히 적혀있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조선 후기 조운선의 침몰과 구조 작업, 침몰 조운선에 적재된 조세의 배상, 국가의 배려와 강력한 재징수 등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지금까지의 조운제 연구는 정해진 기일에 조세를 징수하고, 정해진 기한에 조세를 한양으로 운송하는 것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당시 조운제도의 변화가 어떠했는지를 살피는 방향으로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1865년 11척의 조운선 침몰 사건을 통해 조운 시기가 아닌 때에도 조운선은 조세를 싣고 한성을 오가고 있었으며, 침몰 사건이 일어난 경우 충청 수사와 해당 지역의 수령 및 지방민들이 각종 구호 활동을 통해 가라앉은 곡식을 건져 올린 후 적정가격에 방매하는 형태로 부족분을 충당하였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조운선이 출발하기 전 뱃사람들의 식량이나 여유분의 쌀을 돈으로 바꾸어 운송한 사실도 확인하였다. 쌀값은 지역 또는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 물론, 침몰한 선박에서 건져 올리지 못한 것은 해당 지역에 또다른 부담으로 전가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연구는 조선 시대 조운제도에 대한 미시적 접근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한 면이 있다. 조선 시대 조운관련 자료가 비교적 많고, 정보도 충실한 편이므로 앞으로 유사한 연구가 지속되리라 생각된다. 그에 따라 조선시대 조운제도에 대한 연구자 및 시민들의 이해도 더 깊어질 것이라고 기대된다.

In this article, we examined the details of the sinking of the ship in 1865 recorded in the 『Report of the Chungcheong-do Navy(忠淸監營啓錄)』, relief measures, and compensation measures collected from Gongju and Seokseong. The year 1865 was the third year of Heungseon's reign, when the army undertook major reforms in the political system, military administration, and reconciliation. As a result, the amount of grain sent from all over the country to Hanseong increased, but sinking accidents occurred frequently. The sinking of the ship of Gongju and Seokseong in 1865 is described in detail as a result of the sinking accident while renting a ship of a Gyeonggang merchant named Bae Bae-yeo to transport levied-grain from the two regions. In this regard, this incident illustrates the process of the sinking and rescue operation of the ship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compensation of the levied-grain loaded on the sunken ship, and the consideration and strong recollection of the state of the vessel. So far, research on the Joun system has been conducted in the direction of examining the changes in the Joun(漕運, levied-grain transportation) system at that time, on the premise that it is relatively well observed to collect levied-grain on a fixed date and transport the levied grain to Hanseong on a fixed date. However, through the sinking of 11 ships in 1865, it was discovered that the ships were traveling to and from Hanseong with taxes even outside of the Joun period, and that in the case of the sinking, the Chungcheong Susa, the local leaders, and the local people made up for the shortfall by salvaging the sunken grain through various relief activities and selling it at a reasonable price. Of course, the failure to salvage the sunken ship would have placed another burden on the region. This study develops the logic with a microscopic approach to the Joun system during the Joseon Dynasty Joun system. Since there are relatively many materials related to the Joseon Dynasty and the information is substantial, it is expected that similar research will continue in the future. As a result, it is expected that researchers and citizens will have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levied-grain transportation system during the Joseon dynasty.

Ⅰ. 머리말

Ⅱ. 1865년 공주, 석성 지역 조운선 침몰

Ⅲ. 침몰 후의 사후 조치

Ⅳ.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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