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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청양 지역 백제부흥운동 연구

Study of the Baekje Revival Movement in Cheongyang

본고는 청양의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와 고고자료 및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청양 지역 백제부흥운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청양 지역의 고고자료를 살펴본 결과 청양 중앙에 위치한 칠갑산을 기준으로 북서쪽과 동남쪽으로 유적의 분포가 나눠짐을 알 수 있었다. 한성기부터 유적이 확인되지만 중심이 되는 시기는 남천 이후로 특히 사비기에 해당하는 유적의 비중이 높았다. 또한 백제 후기부터 통일신라까지 편년되는 유적들이 특징적으로 확인되었다. 3장에서는 먼저 살펴본 고고자료와 함께 열기현의 백곡리산성·계봉산성, 고량부리현의 우산성, 사시량현의 방한리산성 등의 산성과 한티·마치·여드재 고개를 살펴보는 것을 통해 고대 청양 지역의 지역 편제 모습과 지역 간의 연결을 살펴보았다. 열기현은 수도의 배후지이자 위성도시로서 생산·방어기지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고 고량부리현과 사시량현은 서로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서해와 연결되면서도 차령산맥의 한티와 대치를 넘어 열기현과 통하는 교통로 상에서 활약했을 것이라 보았다. 4장에서는 고대 청양 지역의 백제부흥운동 당시 모습을 살펴보았다. 백제부흥운동 발호 당시 두시원악 이름으로 사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청양 지역은 사료 내용의 자세함을 볼 때 부흥운동 초기부터 활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 청양 정산지역으로 비정되었던 두량윤성은 고사비성과의 연계 속에서 고민할 때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로 비정된다. 부흥운동 초기에 부흥운동 세력은 임존성에서 무한천을 따라 사시량현과 고량부리현으로 이동, 이후 한티와 대치를 넘어 열기현을 통해 웅진·사비지역을 압박했을 것이다. 부흥운동 세력의 고도탈환이라는 목적 아래 펼친 다양한 활동으로 인해 청양 지역이 백제부흥운동에 있어 중요한 지역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이로 인해 잘못된 것이나마 두량윤성 등에 대한 위치비정이 청양 지역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중요성에 의해 삼국 통일 후 청양 지역에 10정 중 두 번째 정인 ‘고량부리정’이 설치된다.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Baekje Revival Movement in the Cheongyang area, drawing upon an understanding of its natural environment, archaeological findings, and literary sources. Upon examining archaeological data in the area, it was observed that ruins are distributed predominantly northwest and southeast of Cheongyang, with Mt. Chilgap-san at the center. Although traces of ruins date back to the Hanseong era, the focal period appears to be after relocation of the capital to south, particularly during the Sabi era. Notably, sites ranging from the late Baekje period to the Unified Silla period are discernible. Chapter 3 delves into the regional organization and connectivity of ancient Cheongyang, analyzing archaeological evidence alongside key locations such as Baekgok-ri and Gyebong Sanseong in Yeolgi-hyeon, Usanseong in Goryangburi-hyeon, and Banghan-ri Sanseong in Sasiryang-hyeon, as well as the mountain passes of Hanti, Machi and Yeodjae. It is suggested that Yeolgi-hyeon served as both a hinterland and satellite city to the capital, playing roles in production and defense, while Goryangburi-hyeon and Sashilang-hyeon maintained a close relationship, linking to the West Sea and Yeolgi-hyeon through the Hanti and Daechi pass in the Chaeryeong Mountains. Chapter 4 examines the Baekje Revival Movement in ancient Cheongyang. Historical sources refer to the area under the name of Dusiwonak during this movement, indicating early involvement in the revival efforts. Duryangyun-seong, previously designated as the Jeongsan area in Cheongyang, was reclassified as Iseong-ri, Iseo-myeon, Wanju-gun, Jeollabuk-do, amid considerations linked to Old Sabi-seong. In the early stages of the revival movement, the revivalist forces moved from Imjon-seong, following the Muhan-cheon River to Sasiryang-hyeon and Goryangburi-hyeon. Subsequently, they would have pressed upon the Ungjin-Sabi area through Yeolgi-hyeon, traversing beyond Hanti and Daechi. Recognizing the significance of the Cheongyang area in the Baekje Revival Movement, various activities were undertaken to reclaim its historical importance, leading to the misplacement of Duryangyun-seong and others to Cheongyang. This importance ultimately resulted in the establishment of ‘Goryangburi-jeong’ as the second of ten jeong in the Cheongyang area following the Three Kingdoms’ reunification.

Ⅰ. 머리말

Ⅱ. 고고자료를 통해 본 고대 청양 지역

Ⅲ. 고대 청양 지역 편제와 지역권

Ⅳ. 백제부흥운동기 청양 지역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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