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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1920년대 초 『동아일보』의 민간국제교류 기획과 그 의미

The Planning and Meaning of the Private International Interaction of the Dong-A Ilbo in the Early 1920s

DOI : 10.17788/dbhc.2024..20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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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민간국제교류를 통해 식민지배와 제국주의 국제질서를 극복해보고자 했던 역사적 경험의 하나로, 1920년대 초 동아일보 세력의 국제교류 기획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3.1운동의 여파 속에 창간한 동아일보는 국제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국제교류에 대한 동아일보의 관심은 처음에는 열강들이 주도하는 국제기구 및 국제회의에 대한 주목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열강의 국제대회들은 자신들의 민족국가를 가지지 못한 조선인들은 참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였고 따라서 그 대안으로 차츰 민간에서 주최하는 국제교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곧 세계일요학교대회(1920), 세계신문기자대회(1921), 태평양상업대회(1922), 세계기독교학생동맹대회(1922), 만국기독교청년대회(1923) 등 국제대회의 개최 소식을 보도하면서 해당 대회의 조선인 대표 참석 문제를 주목하고 여론을 환기시켰다. 특히 세계신문기자대회의 경우 『동아일보』가 직접 참여하고 하나의 기획으로서 교류를 주도하기도 하여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동아일보 세력이 국제교류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①독립을 위한 방편으로 조선·조선인이 일본·일본인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단위임을 끊임없이 세계에 소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존재, ②총독부의 언론탄압을 비판하고 나아가 총독부의 정책에 합법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수단, ③‘민족국가 부재’의 식민지배 하에서 식민권력의 정치·문화·학술적 헤게모니에 맞서기 위한 전략적 방편으로서의 의미, ④사회주의 세력의 부상 및 친일정치운동 세력과의 결별로 조선 사회 내에서 약화된 자신들의 영향력을 만회할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동아일보의 국제교류는 비록 민간교류였지만 제국주의 열강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와 역학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태평양회의와 아세아민족대회를 축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간국제교류를 둘러싸고 미일 간의 경쟁과 대립이 본격화됨에 따라 『동아일보』의 국제교류 기획에도 여러 제약이 가해지게 되었다. 아세아민족대회의 개최 과정과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국주의 국제기획에서는 민간의 영역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민족국가를 가지지 못한 식민지 조선인에게는 정당한 참여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 일본이 주도한 아세아민족대회에서 조선은 완전히 배제되었으며 호놀룰루에서 열린 태평양회의에서도 조선 문제 토의가 거부되었다. 이에 조선의 언론 및 사회단체들은 조선을 배제하는 미국과 일본의 국제교류를 비판하면서 만국기독교학생연맹이 주최한 태평양학생대회나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세계피압박민족대회 등에 참가를 타진하는 등 독자적인 국제교류 기획을 모색하였다. 제국주의 국제질서로부터의 압박은 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의 국제교류 활동에 현실적인 장애를 가져왔지만, 한편으로 국제회의에 참여할 조선 대표의 자격과 선발방법, 조선 대표를 참칭하는 세력에 대한 단속 문제 등 민간 주도의 국제교류를 진행하는데 있어 필요한 사회적 논의가 활성화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This paper is one of the historical experiences of trying to overcome colonialism and imperial international order through private international interaction, and looked at the international interaction plan of the Dong-A Ilbo in the early 1920s. The Dong-A Ilbo, which was founded in the aftermath of the March 1st Movement, was reducing the need for international interaction. The Dong-A Ilbo's interest in international interaction began with the focus on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nd international conferences led by powers. However, the international competitions of the powers were fundamentally impossible for Koreans who did not have their own nation-state to participate, so as an alternative, they gradually became interested in international interactions hosted by the private sector. They reported on the news of the hosting of various private international competitions, paying attention to whether Korean representatives would attend the competition and arousing public opinion. In particular, in the case of the World Newspaper Reporters' Conference, the Dong-A Ilbo directly participated and led the exchange as a project, resulting in great success. There are four main reasons why the Dong-A Ilbo is interested in private international interaction. First, as a means of independence, there was a sense of problem that Joseon should constantly be introduced to the world that it was an independent unit that was distinct from Japan. Second, international interaction were a means of criticizing the press suppress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further legitimately presenting opinions on policies. Third, it was a strategic measure to confront the political, cultural, and academic hegemony of colonial power. This was because they thought it was a way to make up for their weakened influence in Joseon society against socialist forces.

1. 머리말

2. 1920년대 초 『동아일보』의 민간국제교류 기획

3. 제국주의 국제기획의 자장(磁場)과 대응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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